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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와 친구정우천 입시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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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30  15: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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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사색] 정우천 입시학원장 천에 남은 얼룩이나 몸에 남은 흉터처럼, 어떤 사건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당시의 냄새나 아픔은 사라지고 그저 흔적만 남는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세월이 흐른 후 아련한 마음으로 돌아보면 마냥 빛나고 아름다운 시절로만 기억되는 게 젊은 날이다. 그러나 그 젊음이 헤치고 지나오던 그 시절이 마냥 그렇게 아름답고 빛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흔들리는 자신에 대한 의문으로 어둡고 긴 터널 같은 날이었던 것 같다.

겨우 흔적만 남아있던 기억이 어떤 계기로 다시 생각나기도 하는데, 영화 ‘조커’를 보며 그랬다. 8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았고, 20kg 이상을 감량해 등뼈로도 연기한다는 ‘호아킨 피닉스’의 신들린 연기로도 화제가 됐지만, 내게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친구의 슬픈 삶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영화였다.

영화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던 광대 아서 플렉이, 사회의 냉대와 부조리에 좌절하고 악당 조커가 되어가는 이야기이다.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삶은 정상적이지만 고통스러운 과정임을 보여주고, 광대로 분장하고 춤추며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에서는 타락의 길은 쉽고 편한 길임을 은유한다. 그 편안한 추락이 도달할 곳은 결국 지옥 같은 현실이란 점이 문제일 뿐이다. 약에 의지하며 힘겹게 지탱하던 삶은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으며 끈을 놓아버린 연처럼 나락을 향해 추락한다. 그리고 그는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코미디였어.”라고 웅얼거린다. 이 독백이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친구의 씁쓸한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고도성장기이던 80년대 후반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비상장주식 작업에 손을 댔던 친구가 있었다. 결과는 기대했던 신분의 에스컬레이트는커녕 파산으로 동남아로 도주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20여 년을 외국을 떠돌며 가정과 본인의 건강을 망가뜨리고는 결국 뇌졸중으로 쓰러진 채 고국으로 돌아왔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았더니 친구는 불편한 몸으로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이유를 물었더니, 여러 가지로 괴로운 상황이라 의사가 항우울증제 처방을 해줘 약을 먹으니 이유 없이 자꾸 웃음이 난다고 했다. 그 웃음을 본 주변 사람들이 무슨 좋은 일 있느냐라고 자꾸 물어, 사실은 괴로운데 웃음이 나는 이유를 말해주는 상황이 너무 괴로워 표정을 감추려 마스크를 썼다고 한다. 그 얼마 후 친구는 세상을 떠났다.

어떤 삶은 스스로에게는 처절한 고통이나,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그저 웃음을 주는 코미디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게 세상일이다. 양극화의 끝에서 타인의 아픔에 서로 공감하지 못하고 무감각해져 버렸다면 그런 세상은 희망이 없다. 그런 사회는 마치 높이가 다른 기둥으로 지탱되는 집처럼 위태롭고,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질 것이다. 비틀거리며 견뎌온 세월은 돌아보니 참으로 정글이었다. 그리고 그 정글은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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