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단어가 되지 못하는 언어가 쏟아진다. 그러니 문장이 될 리가 없다. 그에게는 소통의 방법이겠지만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 이제 막 스물이 된 청년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도 있고 얼떨결에 대답을 하는 이도 있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젊은이는 듣지 못해선지 자신의 목적지만을 향해 간다. 거리의 사람이야 어떻든지 그도 종알거리며 바람처럼 사라진다. 눈길이 꽁무니를 쫒는다. 문방구 안으로 들어가 예닐곱 살의 남자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장난감 앞에서 요지부동이다. 그것도 잠시 몸을 휙 돌려 나온다. 하마터먼 부딪칠 뻔 했다. 앞으로 맨 가방에 세례명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김 다니엘’

갓난아기 일 때부터 포대기에 쌓여 다니던 길을 걷는다. 제 부모와 자주 가던 가게에 들러 물건을 흥정하는 흉내를 내며 상가를 한 바퀴 돈다. 지레 겁먹고 비켜서는 이도 있다. 하지만 다니엘은 사람들에게 불편은 주더라도 해를 가하지는 않는다. 혼잣말을 하며 하루의 일정을 수행 할뿐이다. 그렇다고 매일 거리를 배회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 가지 않는 주말이나 공휴일의 무료함을 이기지 못하고 나오는 듯 하다. 고집을 꺾을 수 없는 부모는 한동안 뒤 따라 다녔지만 어느 순간 잘해내는 아들의 모습에 불안함을 억누르며 집에서 기다린단다.

다니엘은 성서에 나오는 인물이다. 기원전 6세기경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느부갓네살왕의 시종이다. 모든 고난을 하나님의 힘에 의지하여 지혜롭게 헤쳐 나가는 용맹한 청년이었다. 훗날 페르시아가 바빌론을 정복 한 뒤 음모를 받아 사자 굴에 내던져진다. 하지만 사자의 습격을 당하지 않고 오히려 위험에 빠뜨리려 한 자들이 사자의 먹잇감이 된다. 오랜 세월이 흘러 영화로 만들어 지기도 했다. 그래선지 대중의 별이 되고 싶은 이들이 다니엘 이라는 예명을 쓰기도 한다. 외모도 수려하고 노래와 연기가 특출한 예인들이다. 사업가들은 회사 이름으로 내걸기도 한다. 어떠한 고난에도 잘 헤쳐 나가는 지혜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리라.

다니엘의 훤칠한 키와 잘생긴 외모를 보며 사람들은 신께서 모든 것을 다 줄 수 없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잘 깨닫지 못하였기에 갖는 선입견이다. 그는 누구보다 행복하다. 들고 다니는 작은 플라스틱병속의 탄산음료도 친구가 된다. 바닷가의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질 때처럼 거품이 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장난감을 만난 어린아이가 된다. 또한 누군가보다 앞서려 하지 않으며 달리다 넘어 진 이의 등을 밟고 올라서려 하지 않는다. 아직 손을 잡아주는 법을 익히지 못한 그는 일어 설 때까지 옆에서 기다려준다. 주어진 하루를 욕심으로 채우지 않으며 순간을 즐길 뿐이다.

우리 모두는 육체와 영혼이 완벽하지 않다. 그럼에도 자만에 가득 찬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와 다른 분류라 여긴다. 나 또한 어석은 사람 중의 하나이다. 가끔은 그의 목소리가 조각난 파편이 부딪치는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조용히 마음으로 듣다보면 단어가 되지 못하였어도 문장으로 이해가 된다. 어눌하지만 담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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