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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두 아내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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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05  15:4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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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고려시대만 해도 여자의 발언권이 강했던 모양이다. 여자가 기(氣)를 부리면 집안이 망하고 암탉이 울면 기둥이 빠진다는 말은 고려 때에는 없었던 모양이다. 남편들이 아내의 조언이나 청을 잘 들어주었던 정황으로 보아 고려의 여권은 대단했던 모양이다.

유월 어느 날 밤 이슥할 때 기병장 세 명이 몰래 왕건의 집을 찾았다. 그들은 포악하기 그지없는 궁예를 물리치고 왕위에 올라 달라고 왕건에게 진언을 할 참이었다. 그러나 왕건의 아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 세 명이 심각하게 머뭇거리자 왕건은 아내에게 뒷밭 언덕에 가서 오이를 따오라고 일렀다. 유월에 오이씨를 심어 칠팔월이나 되어야 오이를 따던 때라 자리를 피해 달라는 것을 왕건의 아내는 알고서 나가는 척 하면서 장막 뒤에 숨어 엿들었다. 남편에게 왕이 되어 달라는 말에 왕건은 아무리 임금이 포악하다 해도 그럴 수 없다고 말하자 불쑥 아내가 나와 임금이 포악하면 의병을 일으켜 갈아치우는 것은 예로부터 있던 일이라고 일갈한 다음 여러 장수들의 말을 들은 즉 자신도 용기가 나는데 대장부가 왜 그러느냐며 손수 왕건의 아내는 갑옷을 내주면서 독려했다. 그리하여 왕건은 고려의 태조가 되었다.

고려의 건국 공신 중에 마군장군 환선길은 아우 향식과 더불어 공이 컸었다. 왕건은 선길을 믿고 왕궁을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선길의 아내는 왕궁의 수위장이 된 남편을 못내 아쉬워하였다. 당신은 재주와 능력이 남보다 월등히 뛰어나 병사들이 당신을 따르고 있다. 큰 공이 있음에도 정권의 권좌는 남에게 있으니 부끄럽다. 이렇게 선길의 아내가 선길에게 입을 모았다. 아내의 말을 듣자 선길은 그 길로 50여명의 정예를 이끌고 왕궁을 쳐들어가 왕건 앞에 섰다. 왕건이 늠름하게 왕좌에 앉아 “비록 선길의 도움이 있어 임금이 되기는 했지만 내 스스로 차지한 자리는 아니다. 천명이 이미 정해져 있는데 네가 그럴 수 있느냐”고 대갈하였다. 이렇게 왕건의 거동이 침착한 것을 보고는 선길은 궁내에 복병이 있다 싶어서 달아나려다 붙들려 참수를 당했다.

왕건의 아내는 조언하여 남편을 임금이 되게 하였고 선길의 아내는 말 짓을 하여 남편의 목을 잃게 하였다. 궁예가 포악하여 백성을 파리처럼 죽여내고 아내와 자식마저 죽이면서 왕권을 미친개처럼 부린 탓으로 몰아내는 일을 해야 한다고 왕건의 아내는 조언을 했고 선길의 아내는 남이 임금이 된 것이 배가 아파 고자질을 했던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고자질로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남의 일이 탐나서 침을 흘리면 그 입은 고자질을 하게 마련이다. 선길의 아내는 남편에게 턱없는 고자질을 나불거려 남편의 목숨을 앗았고 역적의 과부가 되고 말았다.

사람의 세상이 잘되고 못 되는 것은 오로지 사람의 입 나부랭이에 달려있다. 그러니 오로지 사람이 문제이다. 결국 사람은 좋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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