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주 선문대 교수

 

[세상을 보며] 안용주 선문대 교수

불교의 3대 성수(聖樹) 가운데 으뜸은 역시 보리수(菩提樹)일 것이다. 싯타르타라는 아명으로 태어난 부처는 무우수(無憂樹, 근심이 없다는 의미) 아래서 태어나, 보리수(菩提樹, 깨달음을 준 나무라는 의미) 아래서 깨달음을 얻고, 사라수(沙羅樹, 단단한 나무라는 의미, 버마의 국화) 사이에서 열반하셨다고 전해진다. 무우수의 막 피어난 어린 꽃은 4월의 신록(新綠)을 연상시키는 연초록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남태평양을 연상시키는 진한 오렌지색으로 진홍색으로 변한다. 갑자기 부처를 떠 올린 것은 삶이 복잡해지면서 어느 한 순간도 진지한 사유(思惟)의 시간을 가져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미국 인구조사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7월 10일 기준으로 세계 인구는 약77억 명이다. 앨 고어가 information superhighway정책을 부르짖은 지 30년, 세상은 4차산업혁명, AI, IoT, Big Data, Deep Learning, Cloud Computing 등 가히 공상 속의 세상을 만들어 냈고, 지구촌의 77억 명이 쏟아 내는 정보가 컴퓨터에 의해 분류되고 처리되어 우리 일상으로 피드백되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전기가 없어 호롱불과 남포불에 의지해서 숙제를 하고, 구멍난 양말 뒷꿈치를 꿰메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 것만, 나는 93세 노모의 어둑했던 시절을 까맣게 잊고 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낮에는 아궁이에 짚불을 때고, 어둑해지면 호롱불 심지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그을음과 씨름하며 구멍 난 양말, 닳아터진 교복 엉덩이를 누비던 젊디젊은 여인을 기억 속에서 밀어낸 채 살아왔다. 이런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갑자기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 사전을 뒤적이다 우리말뭉치가 있어 찬찬히 읽어본다. '얌치'라는 말이 눈에 들어온다. 뜻을 보니 "마음이 깨끗하여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라고 풀이되어 있다. 내가 알던 '얌치'와는 사뭇 다르다.

한 여당 청치인이 '부끄럽고 창피하다'며 차기 총선에서의 불출마를 선언했다. 칼은 의사에게 주어지면 생명을 구하지만, 망나니에게 주어지면 사람을 죽인다. 검찰은 지난 67일간 한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까발림으로서 능지처참형을 자행했고, 자못 승리의 미소를 머금고 있다. '까발린다'는 말은 "거죽(껍데기)을 벌려 젖히고 속에 든 것을 드러내다"는 뜻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일이 까발려지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반지빠르다. '반지빠르다'는 말은, "말이나 행동 따위가 어수룩한 맛이 없이 얄미울 정도로 민첩하고 약삭빠르다", "얄밉게 교만하다"는 뜻이다. 의뭉스럽기까지 하다. '의뭉스럽다'는, "겉으로는 어리석어 보이나 속으로는 엉큼한 데가 있다"는 말이다.

암울했던 시절에 군화에 짓밟혀 스러져갔던 선배들이 일구어낸 '민주'라는 이름이, 총칼로 군림했던 감돌이들을 보호하는 방패가 된 아이러니를 보고 있다. 우리에게는 옳고 그름을 가리사니할 능력이 있으나, 그저 달랑쇠처럼 이리저리 눈만 돋추뜨고 타인을 질시하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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