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 전 언론인

[김종원의 생각너머] 김종원 전 언론인

어릴 적, 우화나 동화를 읽으면 그 자체로 감동이다. 토끼와 거북이 우화, 개미와 베짱이 우화에선 성실과 끈기에 감동한다. 흥부와 놀부, 콩쥐 팥쥐 등을 읽으면 권선징악(勸善懲惡;선을 권하고 악을 벌하다)에 흥분한다. 의적들의 이야기 홍길동전, 로빈 후드 등을 읽으면 통쾌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우화나 동화의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토끼와 거북이가 다시 한 번 경주를 했을까. 개미와 베짱이는 그 뒤로도 그렇게 함께 공존했을까. 의적 홍길동은 영웅으로 그렇게 계속 살았을까. 로빈 후드는 의적으로 계속 활동했을까.

아마도 토끼와 거북이가 재대결을 했다면 토끼가 이겼을 것이다. 개미는 베짱이가 계속 놀기만 한다면 먹을 것을 나눠주지 않았을 것이다. 홍길동은 영웅으로 남길 원했겠지만, 왕이 되거나 통치자가 됐다면 그렇게 남지 못했을 것이다. 영웅으로 남길 원했지만 악당으로 기억되는 상황도 역사에선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우화나 동화, 이야기는 특정 시점에서 마무리 된다. 그래서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은 마무리되지 않는 연속선에 있다.물과 같이 흐르고, 바람과 같이 날린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셈이다.

계절의 흐름은 명확하다. 봄여름 가을 겨울. 꽃이 피고 꽃이 지고 낙엽이 날리고 황량함만 남지만, 다시 꽃이 피는 찬란한 봄이 된다. 우리의 삶도 자연 속에 함께 한다.

삶의 이야기는 마무리 되고 시작되고를 반복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많은 이야기들이 시작과 마무리를 하는 셈이다.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다. 처음 시작하는 일에 능숙해 질 수 없어 떨리고 힘들지만, 그 만큼 새로운 경험에 짜릿한 맛을 보기도 한다. 첫 사랑이 그 강렬한 추억을 지니는 이유는 처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의 탄생이 경이로운 이유는 그 생명에게 처음이라는 의미 때문일 것이다. 죽음도 어떤 의미에선 처음이란 의미를 갖게 된다. 죽음이후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라, 생명이 마무리 되는 과정에 의미를 둔다.

태서 죽을 때까지를 하나의 이야기라고 하면, 그 안에는 처음과 마무리가 무수하게 많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들을 모두 한 아름씩 갖고 살아간다. 오늘 하루도 처음으로 한 일이 있을지 모르고 마무리한 일이 있을지 모른다. 처음 시작했을 때 두근거림과 떨림을 기억하고 마무리할 때 해피엔딩을 생각하자. 그렇게 한다면, 삶이 보다 더 행복해질 것이다.

이미 잃은 것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미련을 두지마라. 다시 처음이 있고 그렇게 시작하면 된다. 잃은 것은 빨리 잊어버리자. 잘못된 결정을 내린 후에도 냉정함을 잃지마라. 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나타날 결과에 대해 대범하고 여유롭게 대응하라.

잘못된 결정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결정된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게 잘못된 것이다. 잘못된 결정이란 없다. 결정된 일을 제대로 해내는게 중요하다. 항상 시작은 있고 마무리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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