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백목련] 육정숙 수필가

두어 살쯤 되어 보임직 한, 아기가 양손에 떡을 쥐고 놓지를 않는다. 소녀 같은 젊은 엄마가 애가 탄다. 아기가 떡을 입에 넣으려고 애를 쓰면 아기 엄마는 아기 손에서 떡을 빼앗으려 애를 쓴다. 아기엄마는 금방이라도 울음보가 터질 것만 같다. 결국 강제로 떡을 빼앗긴 아기는 기를 쓰며 울어 버렸다. 손에 꽉 쥐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은 굳이 가르침이 필요 하지 않은 것 같다.

처마 끝에 풍경소리가 바람을 따라간다. 그 바람 끝으로 시선이 머문다. 푸르던 산이 어느새 고운 단풍으로 물들었다. 나는 늘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 같은데 풍경은 이미 가을 속으로 달려 와 있다. 나도 한 폭의 산수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한 떼의 새떼가 휘리릭 날아갔다가, 빈 공간을 멀리 휘돌아 날아 와, 마당가에서 종종 거렸다. 세상이치 다 꿰뚫고 있는 듯, 목소리 키우던 세인들도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서서, 이렇게 살가운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맑은 공기가 폐부 깊숙한 곳을 돌아, 불필요 한 것들을 트림처럼 몰고 나왔다. 그 덕에 한결 몸이 가벼워졌다. 세상에서 졸이던 마음도 풀어지니 마음이 절로 편안해진다.

나무와 숲과 바람이 머무는 곳, 인공적인 화려함이 아니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의 두 눈을 황홀케 했다. 동선에 편리함도 없다. 그냥 처마 밑, 마당 끝에 앉아서 먼데 하늘과 붉은 감들이 그림처럼 매달려 있는 감나무와 오색의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산을 바라보거나, 때때로 고샅을 돌아 나오는 듯한, 동구 밖을 한번 씩 바라보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 마음이 평안해지고 훈훈해졌다. 두통도 사라지고 미움도 사라지고 머릿속을 흐려 놓던 많은 생각들마저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떡을 꽉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던 아가의 작은 손이 시야에서 떠나질 않는다. 삶 속에서 좀 더 커 보이려고 발돋움 치고, 목소리 키우고, 빨리 가면 되는 줄 알고 앞서기만 하려고 몸부림치던 시간들.

이제야 자글자글 주름진 손을 내려다본다. 세월을 머금은 손마디가 신음소리를 낸다. 가을이 아름다운 것은 품었던 것들을 모두에게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결 고운 바람이 귀밑머리를 보듬고 지나간다.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이는 모두 한마음이라고 처마 끝 풍경소리가 대신 답을 한다.

‘뎅그렁 뎅그렁’ 허공에 매달려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는 모습이 이런들 저런들 살아가라는 것이려니. 본능처럼 움켜잡고 달려온 세월이 지금의 내 모습인 것을. 풍경소리가 오랫동안 여운으로 귓전을 맴돈다.

이제와 움켜진 손을 펴보니 마디마디 옹이만 박히고 주름만 가득한 빈손이거늘, 거품 같은 아집만 가득 물고 서 있다. 제 자신 어리석음은 알 리 없고 풍경만 바라보고 마음만 편하다고 한다.

‘손에 쥔 것을 어찌 내려놓아! 본능대로 사는 거지’ 쉽지 않을 건가 봅니다. 생각은 앞서는데 마음이 움직이질 않습니다. 오늘도 어제처럼 또, 그런 하루가 저물어 가는 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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