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시인

[교육의 눈] 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시인

교단생활 40여년이 꿈처럼 강물처럼 흘러갔는데 크게 남은 건 없는 듯하다.그럼에도 지체부자유 특수학교인 청주혜화학교에서 5년간 근무한 일은 교단의 징검다리로서 삶의 깊이를 더한 여울이지 싶다. 그곳을 떠나온 지 15년이 지났는데 그 제자들 전화와 소식이 가끔 해바라기처럼 해를 따라 돈다. 한 제자는 누나가 결혼하여 조카를 얻었다는 소식을 전해왔고 약해보이던 여 제자는 교생실습을 나가 학생들과 어울린 사진을 보내왔다. 한국의 오토다께로 불리는 팔다리 하나없는 이구원 제자는 카돌릭대를 졸업하고 성당에서 함께 미사에 참여하는 어엿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다.

나도 어느새 할머니가 되어 첫손녀의 첫돌잔치를 열게 되었다. 어미보다도 나를 닮아서 더욱 귀애하며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 여긴다. 환영의 뜻으로 작은 금목걸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마침 금방을 운영하시는 그 시절 제자인 중기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중기는 ‘근이양증’이라는 장애를 입어 중학교에 갈 나이에 우리 반으로 들어와 2년을 함께 하게 되었다. 발병 원인도 모호하지만 치료약도 아직 없어 안타깝기 이를 데 없고, 팔다리에 힘이 점차 빠져 나중에는 볼펜 하나도 들어 올리지 못한다니 기막힌 희귀장애가 아닐 수 없다. 제자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하니 증세가 심해져 아무것도 먹지 않으려하고 이제 말소리도 잘 나오지 않는다고 풀죽은 답변이다. 내 가슴이 오히려 철렁했다. 그래도 바꾸어 불러보니 간신히 ‘네 네’ 숨이 편하지 않다.

“중기야 밥 잘 먹어야지. 선생님이 미안해. 사랑한다.”

어느 날 어쩌면 중기의 그 작은 대답도 다시 들을 수 없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손에 힘이 스르르 빠진다. 하물며 부모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첫아들로 태어나 온 세상 기쁨이었을 중기를 힘차게 응원하며 오는 길에 청주맹학교에 들러 보았다. ‘제 41회 청주맹학교 예술제’에 초대장을 받았는데 프로그램이 일반학교와 다를 바 없어 궁금하고 조그만 격려라도 될까? 다행히 지역사회 어른들이 많이 와서 학생들을 기다리고 큰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브라스앙상블이 ‘희망의 속삭임’을 연주하고 이어서 1학년 남녀 두 어린이가 나와 ‘이 세상의 모든 것 다 주고 싶어’라는 동요를 부른다. 시각장애로 확실히 그려지지 않는 엄마의 얼굴이 가끔 얼마나 보고 싶을까? 그 소리 높고 천진함에 눈시울이 뜨거워 온다.

후반부에는 맹학교를 졸업 후 나사렛대학교에 진학하여 플루티스트로서 꿈을 키워나가는 학생이 안내견과 함께 무대에 올라 숙연한 순간을 접하기도 하였다. 물론 다른 학생들도 지도자들의 도움으로만 무대에 오르내릴 수 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41회나 계속되었다니 장애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 장애를 뒤로하고 달리는 학생들, 함부로 눈물을 보이지 않는 부모님들, 충주혜성학교를 포함 10개 특수학교에서 생활하는 선생님들! 그들이 아름답다.

심한 병을 앓은 후 19개월 되던 때 시각과 청각을 잃어 삼중장애를 입었으나 인권운동가로서도 활약한 빛의 천사 ‘헬렌켈러’는 이렇게 갈파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보이거나 만져질 수 없다. 그것들은 오직 마음속에서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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