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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심의보 충북교육학회장·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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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1  14: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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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창] 심의보 충북교육학회장·교육학박사

어떤 경우에도 정치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정치는 어떠한 방향이나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 목적이나 방향은 인간들의 이상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경우 그 이상은 추상적이고 유토피아적으로 묘사된다. 플라톤이 구상했던 공화국이나 동양의 요순시대, 오늘날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된 민주사회, 완전한 평등사회라는 공산주의 등은 정치의 신화적인 목적의 여러 모습 들이다.

정치는 이러한 인류의 이상을 향한 여러 가지 방향으로부터의 노력들 중의 하나의 중요한 수단이다. 모든 정치행위의 궁극 목적은 언제나 인간에게 가장 좋은 사회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많은 정치는 인간의 이상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정치가 아니라 정치 그 자체를 목적으로 했다. 수단으로서의 정치는 체제옹호 및 강화라는 목적 그 자체가 된다.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정치가 목적이 되도록 할 때에 먼저 손대는 것이 교육이다. 정치가 어떠한 형태이건 하나의 강력한 체제를 구축하려 할 때에는 반드시 국민 대중을 몰입시킬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벨(D. Bell)은 이데올로기의 대결은 점차 종식되어 간다고 했지만, 오늘날까지 존속했던 정치체제들은 매력적인 이데올로기의 신화 위에서만 등장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정치체제가 사용했던 이데올로기의 근거는 따지고 보면 루소(J. J. Rousseau)의 ‘일반의지’의 변형일 뿐이다. 일반의지의 신화는 이성적이기 보다는 감성적인 힘으로 대중을 매혹시킨다. 그것은 국가, 민족, 평화, 자유, 평등, 민주 등 어떤 구호로 대중의 감정을 격동시킴으로서 그들을 이성과 윤리와 도덕에 대한 맹목으로 만들어 버린다. 일반의지는 감성적이기 때문에 쉽사리 절대화할 수 있다.

일단 절대화 되어버린 다음에는 비논리적이거나 도덕적인 모순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절대화된 이데올로기는 쉽사리 독재와 공포를 만들어낸다. 그 이데올로기가 박애나 자유, 평화일지라도 마찬가지다. 프랑스혁명 후의 자코뱅당적 민주주의, 러시아혁명 후의 공산주의, 히틀러의 민족적사회주의, 북한 독재체제 등이 등장할 때에는 한결같이 ‘민족, 국민, 형제들을 위하여’ 라는 구호를 들고 나왔다.

대중을 강하게 단결시킬 수 있는 것은 이성이나 논리가 아니라 맹목적인 감정의 힘인지도 모른다. 대중의 감성적 태도는 국가나 계급이나 민족 등의 공동체와 그것들이 표방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열광과 함께 그 공동체나 이데올로기의 반대자나 적들에 대한 증오의 감정에 의해서 강화되어 간다. 사랑과 증오의 감정이 서로 상승작용을 하면서 체제를 절대화하는 것이다.

정치체제가 교육을 수단으로 사용할 때에 강조하는 내용 중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맹목적인 양극적 감정을 국민 대중, 특히 자라나는 젊은 세대의 정신 속에 심어주는 일이다. 공동체의 존속과 발전을 뒷받침하는 공교육이 해당 정치체제의 지향과 부합하는 시민을 기르며 체제를 유지시킨다. 국가, 사회의 발전과 자아실현의 통로인 교육이 때로는 권력유지의 도구로 기능하는 것이다. 가공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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