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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트로이카정혜련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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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2  14: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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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정혜련 사회복지사

세필의 말이 끄는 마차라는 뜻의 트로이카는 러시아 특유의 교통기관을 뜻하는 말로 현재는 세 명의 주요한 인물을 뜻할 때도 쓰인다. 조선에도 유명한 트로이카가 있었는데 바로 조선 4대 임금 세종대왕이란 성군을 보필하던 명재상 황희, 맹사성, 허조이다. 세 명 모두 당대의 유학자이자 대신들로 성품이나 개성은 너무나 달랐지만 그들이 협력하여 만들어 낸 조선 전기의 태평성대는 지금도 본받을 만하다.

황희는 세종의 정치적 조언자이며 ‘황희정승’으로 불리며 명재상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관직이 있는 세월만 73년이며 재상으로는 18년간 일했다. 보수적이고 강직한 스타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연구하는 세종에게 정치고문의 역할을 정확히 해냈다. 추진력과 결단력도 두루 겸비하고 정승에 오르기 전에 육조 판서를 두루 거쳐 학식과 실무능력 모두 갖춘 분이었다.

맹사성은 14세인 고려 우왕 때 녹사에 임명되어 관직생황을 시작했으니 이분 역시 내공이 만만치 않다. 옳지 못하면 임금의 명이라도 거부하는 강직함 때문에 태조와 정종 대에 여러 번 파면되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 보는 눈이 매서웠던 태종대왕의 눈에 들어 지금의 대통령비서실장인 지신사(후에 도승지의 역할)을 4년 동안 수행했고, 이때부터 다양한 관직에 중용되었다. 그러니 국정정반에 모르는 일이 없었다.

허조는 세 명의 재상 중 가장 강직한 성품으로 강직함을 넘어 꼬장꼬장하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시비를 냉정하게 구분하고 깐깐함은 말할 것도 없고 임금 앞에서도 하고 싶은 말은 모두 하였다. 심지어 국제관계가 불평등했던 당시, 명나라 영락제가 조선에 말 만 필을 요구하자 허조가 "기병 일만을 양성할 군마를 그렇게 명나라에 뺏기면 우리나라의 국방이 위태로워집니다." 라며 반대했고 영락제가 죽을 때 그가 아끼던 측근들도 순장 당했는데, 명나라에서 황제의 장례식 치룰 때 궁녀 15명을 순장한다니 대국 것이라도 배울게 전혀 못 됩니다." 라며 직언을 했다.

이토록 개성 강한 재상 셋은 공통점이 있으니, 원칙을 지키고, 백성들을 위한 일에 힘을 썼다는 점이다. 황희는 보수주의자였으나 세종이 관노출신의 인재 장영실을 관직에 올리려 할 때 이조판서였던 그분만 찬성했다. 그리고 백성들에 관한 것은 누구보다 너그러웠다고 한다. 맹사성 역시 사람됨이 소탈하고 유머가 있으며, 엄하지 않아 비록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반드시 공복을 갖추고 대문밖에 나아가 맞아들여 윗자리에 앉히고, 돌아갈 때에도 역시 공손하게 배웅하여 손님이 말을 탄 뒤에야 들어왔다. 특히 황희와 허조 사이에서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균형을 맞춘 것도 그의 공적 중에 하나이다.

허조는 어린아이와 노인에게 몸에 글씨를 새겨 넣는 자자형(刺字刑)을 반대했다. 그 역시 백성들에게는 너그러웠지만 부정부패한 관리에게는 엄격했다. 최근에 시절이 하 수상하니 역사 속 조상들의 발자취를 돌아보게 된다. 이 분들을 보니 서로 다른 생각과 배경에도 애민(愛民)의 정신이 있다면 협치(協治)도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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