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청주대 겸임교수·로컬콘텐츠 큐레이터

[충청의 창] 변광섭 청주대 겸임교수·로컬콘텐츠 큐레이터

시골집 마당에 가을볕이 가득합니다. 고추잠자리가 빨랫줄에 앉아서 춤을 추고 장독대에 심은 산초나무가 하얀 꽃을 피우더니 검붉은 열매가 익어갑니다. 이산 저산에서 소쩍새가 울고, 큰 길 건너편 과수원집 사과가 붉게 빛나고 있습니다. 황금들녘을 바라보며 이 가을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합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노래를 하고, 사랑을 하면 되겠지요. 높고 푸른 하늘을 우러러 삶의 향기 몇 점 만들겠노라 다짐합니다.

오토바이 소리가 나더니 우체국 아저씨가 소포 하나를 내 품에 안기고 떠납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 원로 수필가 반숙자 선생님의 수필집입니다. 당신은 초등학교 교사였습니다. 젊은 나이에 양쪽 청력 대부분을 잃고 교단에서 내려와야 했습니다. 그 이후로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성당에서 열심히 기도하며 매 순간이 기적이고 축복이라고 여기는 분입니다.

베토벤이 그랬고 에디슨이 그랬던 것처럼 장애가 당신의 가야 할 길, 해야 할 일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운보 김기창은 어려서 청각을 잃어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붓끝으로 말하고 붓끝으로 세상의 모든 풍경을 담고자 했습니다. 어쩌면 정상인보다 더 많은 소리를 듣고, 더 많은 사유의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은 열정과 투지로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당신 또한 청각을 잃었지만 세상을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들으며 글밭을 가꾸고 있으니 얼마나 예쁘고 값진 일이겠습니까.

당신과 저는 40여 년 전 짧은 인연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문학모임에 가입했습니다. 처음에는 ‘제3문학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는데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지적과 감시가 잇따르면서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아마도 ‘나림’ 아니면 ‘나목’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요일마다 청주의 한 교회 청년회 사무실에 모여 수필가 이재인 선생님, 시인 김효동 선생님, 시조시인 전태익 선생님 등으로부터 문학이 무엇인지,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그 때 당신을 처음 만났습니다. 충주의 탄금대로 문학답사를 갈 때였습니다. ‘감자꽃’의 권태응 시인 시비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깎아진 절벽 아래로 충주호의 물살이 바람의 현을 타고 흐르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 당신은 내 팔을 잡으셨습니다. 참 곱고 아름다웠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무어라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부끄러웠습니다. 당신의 두 손 내 팔을 꼭 잡았을 때, 그 손 놓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왠지 알 수 없는 끌림이 있었고 향수가 있었으며 쓸쓸함도 느꼈습니다.

그 때 저는 몰랐습니다. 왜 당신께서는 한 마디 말씀도 없었는지. 그저 우리 일행과 함께 하며 햇살과 풍경 앞에서 맑은 미소만 띄우셨는지를. 세월이 지나서야 당신의 아픔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날의 기억은 빛바랬지만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내 가슴에 지지 않는 꽃이 되었습니다. 가을볕 가득한 오늘 나는 당신의 마음을 읽습니다. 추억은 불멸입니다. 사랑입니다. 당신의 『미루지 않는 사랑』처럼 저도 새 날의 문을 열겠습니다. 삶은 매 순간이 용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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