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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과 순환정우천 입시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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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3  14: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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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사색] 정우천 입시학원장

천변 산책로에 물기 잃은 풀들이 누렇게 변하며 한해 삶을 마감할 준비를 한다.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단풍이 어우러진 공원길도 이제 계절이 지나가고 한해가 끝나감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스스로 소멸할 시기를 알고 사라지는 것은 아름다우면서도, 어쩐지 쓸쓸하다. 너무 넉넉하고 풍성하면 좀 부담스럽고, 조금 모자라야 더 안쓰러워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 부족함에 대한 관심이 애정을 갖게 하고 안타까움을 낳는다. 가을은 그렇게 안타까움으로 보내는 계절이다.

겨울을 준비하며 단풍으로 마무리되는 나무의 삶은, 노년으로 다가가는 인간의 삶과 비슷하게 닮아있다. 풋풋한 새잎으로 태어나 활기 왕성한 여름을 보내고 그 왕성함에 가려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힘이 떨어져서야 비로소 나타나는 특성이 그렇다. 단풍으로 표현되는 대표적인 두 색은 노란색과 빨간색의 단풍이다.

노란색은 엽록소의 푸른색에 가려 보이지 않던 ‘카로티노이드’란 노란 색소가 날씨가 쌀쌀해진 후 엽록소가 파괴되고 나서야 나타나는 색이다. 빨간색은 잎에서 만들어진 탄수화물이 미처 줄기로 넘어가지 못하고 잎에 남아 붉은 색소인 ‘안토시아닌’으로 바뀌어 나타난다. 결국, 사람의 삶처럼 혈기왕성할 때는 뒤에 숨어 감춰져 있던 성질이 한차례 숨이 죽어서야 나타나기도 하고 미처 사라지지 못하고 남은 특성이 나타난다는 점이, 그렇게 인간의 노화와 유사하다.

시간은 언제나 일사불란하게 한 방향으로 흐른다. 그 시간의 흐름에는 어떤 구분이나 경계도 있을 수 없다. 단지 과거와 미래를 나누는 현재라는 칼끝 같은 경계선 위에서 쉼 없이 지나가는 흐름에 온몸을 맡기고 떠밀려가는 게 우리의 삶이다. 시간은 한눈을 팔거나 게으른 법도 없이 끊임없이 밀려온다. 아마도 이 중압감을 이기기 위해 인간은 시간을 인위적으로 나누고 구획을 했을 것이다.

나눔은 직선적 시간의 흐름을 순환하는 회전으로 바꾸어 오늘이 지나도 다시 내일이 밝을 것이며, 이 계절이 지나도 다시 돌아 그 계절이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인간은 아마도 이 때문에 시간의 압박감을 견뎌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을은 이 순환을 끝내고 다시 새로운 순환을 위한 시작점을 향해 가라앉아 가는 시기이다. 새롭게 태어났던 것들이 시간 속으로 사라지는 방법은 뻔하다. 익숙해져 권태로워지거나 기득권이 되어 부패하거나이다. 새잎으로 태어났다 낙엽으로 소멸하듯 자신을 소멸시키지 않고서야, 다시 새로워질 수 없는 법이다.

세상의 어떤 눈길도 받지 못하고 평범하기만 해 흔해 보이는 모든 삶도, 그 속에는 그만의 특별한 드라마가 있다. 소리 없이 사라져가는 어떤 낙엽도 그 나름의 사연이 있다.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흔한 그 날 중에도 어떤 날은 ‘언젠가는 오늘을 생각하며 추억하겠지.’ 싶은 날이 있다. 바람에 흩뿌려지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잎 아래서 오늘은 훗날 어떤 날로 기억에 남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오래도록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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