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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殉國)선열들의 고결한 희생, 민주와 공화의 대한민국장기영 광복회 충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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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4  14: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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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장기영 광복회 충북지부장

대한제국 융희(순종)4년, 1910년 8월 29일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이어 온 민족과 강토에 대한 국권을 침탈당했다. 우리 국권을 강탈한 일본은 세계 인류사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잔악하고 참혹한 학살의 참상을 자행 했다. 우리 대한의 애국지사들과 선량한 양민들에 대한 일본의 극악무도한 학살에 대해 “귀신도 무서워서 도망을 간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잔학했던 일제에 항거해 목숨까지 바쳤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후손들은 오늘날 어려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독립운동(혁명)을 하면 3대가 망한다”라는 말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후손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우리의 위대한 애국선열들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어도 예관 신규식 선생에 의해 1917년 7월 4일 민주공화국 수립을 위한 13도 대표 의회(국회의원)를 구성하고, 입헌(헌법)제정, 법치주의 실현을 위한 정부 수립을 천명한 최초의 독립선언서 선포, 대동단결선언(국가 문화재 제652호) 등 국권을 강탈 당한지 채 9년도 되지 않은 1919년 3월 1일 민주와 공화의 새로운 나라로서의 건국을 세계만방에 선포 했다.

그 해 4월11일 민주공화국으로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임시정부를 수립했고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독립을 위한 항일과 항전의 무장 독립전쟁 등 민족의 구심 역할을 끝까지 수행 했다. 이로써 1919년 대한민국 건국 및 임시정부의 지휘 아래 애국지사들은 1920년 6월 7일 봉오동전투, 같은 해 10월26일 청산리전투에서의 대첩 등 수 많은 독립전쟁을 수행했다.

더욱이 대한민국의 독립군은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에 파병하여 인도, 미얀마(버마) 전쟁까지도 참전을 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으니, 세계만방에 대한민국의 위대함과 임시정부의 독립 의지를 독립군의 피로서 떨쳤다는, 실로 엄숙하고 자랑스러운 역사다.

1945년 8월 15일 군국주의 일본의 패망과 동시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열강들은, 1919년 민주공화국으로서 대한민국 건국 및 임시정부의 지휘와, 애국지사들의 희생으로 대(代)를 이어 가면서 까지도 끊임없는 독립 투쟁과 항일전쟁을 이어온, 대한민국의 독립을 인정했다. 이렇게 길고 긴 민족의 고투를 겪으면서도,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무궁화 꽃 같은 애국지사들의 피로써 희생을 한 구국의 일념에 의해 마침내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

인류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본 군국주의의 극악무도함에도 굴하지 않고 싸우다가 민족의 꽃 무궁화로 승화한 순국선열들을 조금이라도 생각 한다면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최소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기원은 알아야 할 것이다.

올해는 3.1혁명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뜻깊은 해다. 올해의 끝자락에 어김없이 다가온 순국선열의 달 11월이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군국주의 일본의 참혹한 만행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결사 항전을 했던 애국지사들의 구국에 대한 의지와 고결한 희생을 바탕으로 100년 전 건국 한 대한민국의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대한민국의 보국을 위해서라도 ‘순국선열의 날’(11월17일)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조국을 위해 장렬히 산화하신 무명의 애국지사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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