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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들이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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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4  14:4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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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시평] 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가을이 무르익은 홍시로 매달려 있다. 절정을 이루던 낙엽이 흩날리며 축제의 마지막 페이지를 캘리그라피로 쓰고 있다. 가을비가 조용히 피날레를 장식한다. 이제 곧 겨울로 가는 길목이 열린다는 메시지다. 책 나들이하기에 딱 좋은 계절로 접어들고 있다. 여기저기 출간 소식이 풍성하다.

우리 수필문학회회에서도 한해의 글 농사가 여물어 출산을 앞두고 라마즈호흡에 들었다. 영상시대에 누가 종이책을 읽으랴하지만 책은 숱하게 쏟아져 나오고, 또 누군가는 그 책을 읽는다. 책은 사라질 수 없는 정신문화의 숨이다. 도서관 운영도 날로 확장되고 있음이 그 예이다.

진천군에 가면 양촌이라는 자그마한 마을에 조선시대 4대 사설 도서관의 하나였던 ‘완위각’ 터가 있다. 그 당시 만권의 장서를 보유하였다하여 ‘만권루’라고도 불렸다. 문인이자 미술평론가인 담헌 이하곤의 개인 장서각이다. 이정구의 ‘월사고택’ 유명천의 ‘천문당’ 유명현의 ‘장성당’과 함께 조선 후기 4대 사립장서각 중 하나로 꼽혔다. 모두 7동으로 된 한옥 건물이었으나 현재 사랑채 1동만 불에 타다만 채 터와 함께 역사를 증거하고 서 있다.

이하곤(1677~1724)은 고려 말 학자 이제현의 14대 손으로 대제학 이인엽의 아들이다. 친가, 외가, 처가 모두 탄탄한 당대 학자 집안이다. 그는 숙종시대 진사과에 장원급제하였으나 대과에 나가지 않고 고향인 초평으로 내려와 학문을 닦으며 서책, 시, 서화작품 수집에 몰두한 장서가로 알려져 있다.

완위각은 이병연을 비롯한 윤두서, 정선 등 당대 유명한 문인, 화가들과 교류한 장소로서 문화적 공간이요 소통의 장이었다. 특히 최명길, 최석정, 정인보로 연결되는 강화학파 인사들이 많이 찾아와 학문과 토론을 벌였다 한다. 그만큼 인근에서 많은 선비들이 드나들며 학문을 닦았으리라. 과거시험 보러 한양 길에 오른 남도의 선비들이 묵으며 서책을 보았다는 설도 전해온다.

만여 권을 보유했던 도서관 완위각의 그 많은 서책은 어찌됐을까. 한국전쟁 등 전란을 겪으면서 불쏘시개 또는 뒷간의 휴지로 소실되었다 한다. 만권루의 위용은 고사하고 홀로 휘우듬히 겨우 역사의 흔적을 지키고 서 있다.

그래도 어린 시절 그곳에서 학문을 익혔던 위당 정인보 선생 같은 이가 있어 위안을 삼아 본다. 비록 서책은 소실되었지만 그곳에서 익힌 학문과 정신은 길이 전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 위당 선생은 4대 국경일 노래를 모두 지으신 분이요, 일제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우리 얼을 꼿꼿이 지켜오지 않았던가. 책을 읽고 익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일깨울 수 있는 곳이 영영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내 마음 한 자락 풀어본다.

조선후기 4대 장서각 중 하나인 완위각이/ 초평면 용정리 양촌마을에 버젓 했었다네/ 만권의 서화를 보유하여 만권루라 불리던 곳/ 장서가요 문인화가인 이하곤, 그의 정성 어디가고/ 허물어가는 사랑채만이 흔적을 증거 하듯/ 휘우듬한 다리 부여잡고 자존심 버티고 섰다//

한양 길 선비 머물고, 명사들 교류하던 곳/ 의학, 천문, 지리, 서화 두루 갖춘 만권루/ 그 많은 장서 소용돌이 전쟁 끝내 못 견디고/ 불쏘시개 된 문화, 잡풀 밭에 동댕이질 당했지/ 예서 학문했던 학자들 선비정신 꼿꼿하듯이/ 옛 선비의 문화 공간 다시 꽃필 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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