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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로 데려다 주세요이향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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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7  15: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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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익숙한 멜로디이다. 잔 가득 채운 따뜻한 홍차위에 뿌려진 크림 같은 음악이다. 느린 템포의 전주가 지나고 서양악기와 어우러지는 댓잎의 음색이 감미롭다. 플라이 미 투 더 문 (fly me to the moon)이라는 추억의 팝송이다. 간간히 라디오에서 들으면 감성 충만 하였었다. 한줌도 안되는 가을의 영역에서 겨울로 들어서는 오늘 같은 날은 몇 번을 들어도 달큰하다. 작곡가 ‘바트 하워드’가 1954년 작곡, 작사한 팝 스탠다드한 곡 이란다. 원 제목은 ‘인 아더 월드‘ (in other words)이었는데 첫줄가사인 ‘fly me to the moon’ 으로 유명해졌으며 공식적인 제목으로 명칭 했단다. 바트 하워드는 이곡으로 미국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려 졌다고 한다.

해군으로 군복무중인 아들은 자랑스럽게도 6개월간의 순항을 떠났다. 그리워하는 가족을 위해 어렵게 연주를 녹음하여 보내주었다. 그리움만큼 듣고 또 듣는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의 만남도 감동이었지만 국악기인 대금으로 연주하여선지 내게는 그리움까지 더해졌다. 어린시절 아들의 달나라는 참으로 많았고 자주 바뀌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음악평론가로 굳혀졌다. 꿈을 키우는 중 음악선생님의 권유로 국악을 접하면서 대금연주자의 길로 들어섰다. 한걸음 앞으로 내디딘 듯 하면 넘어지기 일쑤였다. 포기하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에 선생님 뒤에 서서 미래를 가늠하고 재단했었다. 어미는 앞서갔지만 아들은 제 보폭에 맞추어 걸었다. 설혹 상처 난 무릎이 아려도 의연하게 좋아하는 일을 하는 대가라며 겸허히 받아 들였다. 어린 것이 얼마나 두려울지 알면서도 매정했었다. 아이보다 더 쓰라렸지만 그래야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내 인생에도 달나라는 있을까. 지천명을 넘어서는 동안 수없이 꿈꾸고 좌절했다. 수줍은 소녀의 꿈이 현실에 부딪혀 주저앉고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결혼 후에는 가정경제를 일으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판단으로 그때만이 적기였던 많은 것을 놓쳤다. 뒤늦게 쫓으려니 숨이 차다. 입에서는 어눌한 발음이 새어 나오고 걸음걸이도 뒤뚱인다. 한쪽으로만 치우쳐 균형을 잃어 평형대에서 떨어질 뻔 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쉽게 손을 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가만히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들려오는 것을 듣다보면 그것이 달나라임을 알 수 있다.

달나라로 간다는 것이 모든 꿈을 다 이룬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솝우화의 욕심 많은 개처럼 지나치게 욕심내다 보면 개울에 비친 자신이 물고 있는 고기를 놓쳐버릴 수도 있다. 욕심과 꿈은 구분 지을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영혼을 휴식케 하는 취미든지 육신을 먹여 살리는 돈벌이 이든지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다만 갈증 되지 않는 삶이길 바랄뿐이다.

입동이 지났으니 겨울이다. 지금쯤 유럽의 바다를 지나가고 있는 아들을 태운 대한민국 해군의 배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바란다. 휴대전화를 들어 아들과의 추억을 찾아본다. 보내준 음악을 듣는다. ‘달나라로 데려다 주세요.’ 마음의 그리움 주머니에 고스란히 담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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