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묻혀 지내는 도시인들은 형태, 색채, 구조 등 생활공간이 사람의 감정, 생각,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모른 채 사람과 사회를 탓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제도적 공간 환경 정책이 인간의 삶의 질, 소통에 미치는 영향을 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은 사람들의 심성을 황폐화하고 각박하게 하고 있다. 이제라도 인간의 정서와 행동에 미치는 공간 환경의 문화적 특성을 고려하여 창의성을 높이고 지역경제에도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지혜를 모아야 하겠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잿빛 전주나 길가에 세워진 긴 막대 모양의 구조물에 동그랗게 매달린 가로등은 어두운 밤길을 비춰주는 소중한 존재이지만 고마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이란 생각만으로 디자인적 요소를 간과해 왔기 때문에 오히려 가로등의 가치에 대한 평가가 절하됐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가로등은 생각의 차이에 따라 수많은 모습으로 변모한다. 그저 길을 밝혀주기만 하는 전구에서 예술작품, 놀이공간, 쉼터, 녹색에너지로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가로등은 거리의 성격을 말해 준다. 일본 오사카의 한 골목은 전통음식점과 1900년대 초반의 건축물 외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곳의 분위기를 한껏 살리는 둥근 모양의 망 안에 전구가 들어있는 특이한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다. 가로등에 불이 켜지면 등롱(燈籠)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로등만으로도 이 길목은 옛 모습을 재현해 놓은듯한 모습을 연출할 수 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아메리카무라 거리에 설치된 가로등은 일본 에니메이션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로봇 모양을 하고 있다.

젊은이의 거리답게 세련되고 재미있는 모양을 한 이 가로등은 각기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흥밋거리를 준다. 큰 가로 등불이 사람모형의 머리 부분을 나타내고 손에 들고 있는 미등을 통해서는 다양한 홍보를 할 수도 있다. 아메리카무라의 가로등은 단지 가로등의 역할뿐만 아니라 광고매체의 역할도 함께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콩코르드 광장 주변의 가로등은 밤이 되면 우아한 조각품에 가깝다. 화려한 금테를 두르고 있지만 전구에 불을 밝히면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주변 문화재와 건축물을 압도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어 더욱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청양군의 고추가로등, 전남 무안군의 낙지를 형상화한 가로등이 있다. 주변 환경과의 조화, 새로운 도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하여 '디자인 서울거리'를 표방하며 강남대로의 '미디어 풀'이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시설물이다. 예술작품과 첨단기술, 가로시설이 통합된 것으로 it강국인 우리나라의 장점을 잘 살려 외국 관광객에게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이제 가로등은 어두운 길을 밝히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기존의 가로등에 상상의 날개를 달면 거리는 아름답고 특색있는 공간이 된다. 상상은 기존의 것에 변화를 주면서 시작된다. 우리가 추구하는 아름다운 공간, 따뜻한 도시는 공간의 재생과 친환경 디자인의 실현으로 가능할 것이다.

▲ 교육문화원 부장

공공 디자인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무슨 공사나 개발 사업이 아니다. 주민과 전문가, 다양한 이해관계자, 공무원들이 시간을 가지고 지혜를 모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의 의식과 문화를 바꾸는 일이다. 공공 디자인은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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