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법혜 스님·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충청산책] 김법혜 스님·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막을 내렸다. 수험생 54만여 명의 열정과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모처럼 잠도 푹 자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책도 마음껏 읽고, 영화와 연극 등 다양한 문화체험을 통해 더 넓은 세계를 안아 봤으면 한다. 또 농촌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눈도 맞추고 이야기도 하면서 편히 지내고 오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활동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차분하게 고민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제나 수능이 끝나면 잘 봤다기보다는 망쳤다는 수험생이 훨씬 많다. 이미 지난 일인데도 미련이 생기기 마련이다. 올해 또 다시 수능 한파가 영하로 떨어졌다. 따뜻한 수능일도 몇 차례나 있었지만 예년과 기온이 비슷한 수능일은 더 많았다. 학생 때 소풍날 비온 것이 오래 기억에 남듯이 수능 날 한파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또 머피의 법칙이란 말이 생각난다. 나에게만 재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법칙을 말한다. 열차표를 사기 위해 창구 앞에 줄을 서면 꼭 다른 줄이 먼저 줄어든다. 실은 재수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렇게 느낄 뿐이다. 열차표 판매 창구가 여러개 있다고 치면 내 줄이 가장 먼저 줄어들 확률은 5분의 1에 불과한 반면 다른 줄이 먼저 줄어들 확률은 5분의 4다.

수능일에 꼭 한파가 몰아친다고 느끼는 데도 비슷한 착각이 일지도 모른다. 유독 하루에 수능을 끝내버리다 보니 인생에서 수능일 하루의 컨디션이 무척 중요하다. 날씨에까지도 수험생이나 학부모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이 수능 한파란 말 속에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이제 수능은 끝났다. '초등학교 때부터 12년간의 공부가 수능을 위해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능은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해마다 영어 듣기 평가 시간에는 국내 항공기 운항마저 중단하는 등 수능은 국가적인 중요 행사로 치러진다. 전 세계적으로 거의 유례가 없을 정도로 우리 수능이 유별나다. 지금까지는 그나마 수능이 가장 공정하고 신뢰할 만한 시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최근엔 수시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수능을 중심으로 하는 정시를 확대하자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수능의 내용이나 형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맞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현재 우리는 공정한 선발 시험이라는 미명하에 미래 세대에게는 거의 쓸모없는 단순한 지식들을 공부하도록 하는데 많은 시간과 재원을 낭비하는 형국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되는 인재는 글로벌 창의융합인재, 즉 바른 인성을 갖추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세계를 무대로 미래를 선도할 수 있는 그런 인재가 필요하다. 이런 미래형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내용과 형식의 수능으로 바꿔져야 한다. 지금처럼 정답 찾기 위주의 문제 유형이나, 1년에 오직 한 번만 시험을 볼 수 있고 떨어지면 다시 도전하기 위해서 1년을 기다리게 하는 행정편의주의식 시행 방식 등을 과감히 개선되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글로벌 창의융합인재를 적극적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교육 내용과 방법혁신뿐만 아니라 수능의 혁신도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수험생 여러분, 실망하지 말자. 좋은 게 좋은 게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게 아니다. 인생 자체엔 희로애락이 있다. 우리는 그 속에서 휩싸여 살아갈 뿐이다. 노력하고 기대했던 만큼 점수가 나왔으면 다행이지만 생각보다 점수가 낮았다고 좌절해서도 안된다.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 모든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 인생은 기쁜 것도 슬픈 것도 행복한 것도 불행한 것도 아니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 그 자체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지, 그 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깟 수능이 뭐 그리 대단할까’ 하는 생각이 현실화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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