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월요일아침에] 김영애 수필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은 언제나 쓸쓸하다. 그 때도 이맘때 즈음이었다. 여고생의 감수성은 늦가을의 감성에 푹 빠져있었다. 창밖에는 낙엽위로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긴 머리를 찰랑대며 음악 교생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그때까지 내가 본 여자 중에 그녀는 가장 예쁘고 아름다웠다. 그녀는 교탁위에 휴대용 턴테이블을 올려놓았다. 아름다운 그녀와의 교생실습 수업시간은 신세계였다.

그날은 교생선생님과의 마지막 수업 날이었다. 그녀도 아쉬운 듯 눈가가 촉촉해졌다. 우리들에게 마지막 선물을 준비했다면서 레코드판을 손수건으로 정성스럽게 닦은 후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 선생님께서 즐겨 들었다는 그 클래식 음악은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루 바이젠(집시의 노래)” 이었다.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 이었지만 조용히 음악을 감상하면서 선생님과의 이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교실에는 음악이 흐르고 선생님은 비오는 창밖을 내다보고 생각에 잠기셨다.

스페인의 천재 음악가인 사라사테(1984~1908)는 파가니니이후 최고의 명성을 날렸다. 7세 때에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으로부터 이탈리아의 명품 악기인 스트라디바리를 하사 받을 정도로 천재성을 보였다.

대부분이 조국 스페인의 민족적 색채를 가진 작품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곡이 지고이네루 바이젠 이라고 한다. 독일어로 집시의 노래라는 뜻의 이 곡은 정처 없이 유랑하며 떠도는 집시들의 삶의 애환 그리고 기쁨을 묘사한다. 강렬한 도입부에 이은 느리고 애수에 찬 느낌이 끝나기 무섭게 정신없이 몰아치는 연주가 계속된다.

파가니니가 굵고 풍부한 음색의 과르네리를 즐겨 연주했다면 사라사테는 화려한 스타일을 추구했던 스트라디바리의 찬란한 음색을 즐겨 연주했다고 한다. 특히 헝가리 여행 시에 집시들의 무곡을 소재로 한 지고이네루 바이젠의 아름다운 선율은 온몸의 세포를 자극하여 행복을 느끼게 해주었다. 도입부에 느리고 애수에 띤 선율로 전개 되다가 후반부에는 강한 리듬을 바탕으로 빠른 춤곡이 전개 되면서 바이올린의 관능적인 선율과 화려한 기교로 마무리가 된다.

그날이후 나는 고전 음악 다방에 가면 내 마음속에 명곡이 되어 있었던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루 바이젠을 신청해서 듣고는 했었다. 그럴 때마다 여고시절 교생선생님과의 마지막 수업 시간이 흑백영화처럼 떠오르고는 했었다. 클래식에 문외한이었던 나를 클레식의 애호가로 만들어준 음악 시간이었고 잊지 못할 선생님이셨다. 오늘처럼 늦은 가을 비가 오는 날이면 듣고 싶어지는 음악이다. 아름다웠던 그 음악선생님도 지금쯤은 어디선가 조용히 늙어가고 계실까! 이 가을에 문득 선생님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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