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윤 건양대학교 대학원장

[내일을 열며] 안상윤 건양대학교 대학원장

요즘 한국 사회는 과연 불신의 사회인가?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국민의식조사에서 국민 50% 이상이 우리 사회를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특히 30대 전후의 젊은 청년들의 사회에 대한 불신 정도는 60%가 넘는다고 한다.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커다란 불신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법과 법조인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법은 사회에서 정의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법이 정직하고 공평하게 적용된다고 믿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정치권력의 부침에 따라 법도 마치 고무줄처럼 적용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사회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권력가들이나 가진 자들에 대한 법 적용이 매우 엄격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법을 신뢰하고 따른다. 하지만, 현실에서 돌아가는 상황은 이와는 정 반대이다. 우리의 법 적용은 여전히 유전무죄요, 무전유죄이다. 경제가 어려우니 법이라도 바로 서야 선량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마음이 좀 편할 터인데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합법을 가장한 법에 의한 약탈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권력가들의 법에 의한 약탈이 무서운 이유는 대중의 마음으로부터 도덕 감정을 증발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에서 도덕적 감정이 사라지고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악감정이다. 그 실체는 무조건 누구에겐가, 무엇인가 복수하고 싶은 심정에 빠지는 것이다. 일본의 수도 한 복판에서 칼부림이 일어나고, 관공서로 달려가 죄 없는 공무원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도 마음에 원인모를 악감정이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유 없는 살인, 방화, 차량 훼손 등의 사회병리 현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처방은 정해져 있다.

가장 먼저 사회 지도계층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정직하고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법이 정의롭게 작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정치인들이 도덕적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것은 거지가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보다 더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독일 사회학자 칼 만하임은 일찍이 사회병리 현상의 한 증상으로 ‘사회적 약탈도덕’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약탈도덕이란 권력을 쥔 자들의 부정과 비리는 마치 합당한 것으로 인정받음으로써 선량하게 사는 사람들로부터 도덕적 정신을 약탈하게 된다는 병적 사회현상을 말한다. 만하임의 약탈도덕이론은 당시 권력을 이용한 나치즘의 부정과 비리를 비판하기 위한 상징적인 저항지성(抵抗知性)이었다.

자본주의 사회는 어쩔 수 없이 권력가들의 부도덕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 속에 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만들어진 법이다. 하지만 갈수록 정치와 법, 행정이 허접하게 운영되다보니 국민들이 거리로 나서게 되었다. 최근 일련의 사태로 국민들은 법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악마처럼 작용하고 있다고 믿는다. 법이 무너지고 나서 남는 것은 상호 약탈밖에 없다. 그 책임은 정치인, 법조인, 관료와 같은 권력가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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