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본주의 맹목적 추종

최근 일본에서는 장기간의 사회 침체에 대한 원인이 글로벌 자본주의 운영방식에 대한 맹목적 추종 때문이라는 반성이 일고 있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이 내세운 레이거노믹스 체제 하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따라 하기에 나섰던 일본이 1990년대 이후 그 성과를 얻기보다는 계속되는 경기침체와 그에 따른 사회불안 증폭으로 고민에 휩싸여 있다.

실제로 2008년 개최된 다보스포럼에서 공개된 국제경쟁력 비교수치를 보면, 일본은 국가경쟁력 종합 순위에서 9위로 밀려났으며, it 경쟁력에 있어서는 19위를 차지하고 있다. it 경쟁력에 있어서 9위를 차지한 한국보다 한참이나 뒤져있다.

10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침체와 무기력에 대해 많은 일본 지식인들이 오랫동안 유지돼 온 일본적인 것의 상실과 맹목적인 미국 따라 하기의 결과로 진단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반성의 대열에는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그동안 일본 정부 내에서 미국식 개혁에 동참했던 인사들도 다수 포함돼 있어 관심을 끈다. 이들 반성하는 지식인들이 진단하는 일본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는 갈수록 커지고 있는 빈부격차와 그로 인한 반인륜범죄의 증가 및 공동체의 붕괴이다.

일본은 과거부터 사회적으로 빈부격차가 크지 않은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나라이다. 대부분의 부자들이 미국이나 한국의 일부 부유계층처럼 서민들이 근접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저택을 소유하거나 일반 시민이 접근하기 어려운 문화적 경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것은 일본 특유의 공동체 의식, 즉 집단정신에 기인한 것으로 일본을 전후 세계 2위의 강대국으로 끌어올린 동인이 됐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사회 분위기는 급격히 바뀌었다.

빈부격차가 현격하게 커지면서 궁지로 내몰린 계층의 묻지마식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1985년 재분배 전 빈곤율 13%, 재분배 후 빈곤율 12%를 유지하던 일본이었지만, 2005년에 들어와서는 재분재 전 빈곤율이 약 27%까지 치솟았다. 사회 전반에 경제적 평등이 실현되기보다는 격차가 더욱 심화됐다.

한 국가의 빈곤율이란 전체 인구 중 소득의 중앙치에 있는 사람이 얻는 소득의 50% 이하의 소득밖에 얻지 못하는 인구집단의 비율을 말한다. 따라서 슈퍼 부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한 국가의 빈곤율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경제적 평등 분위기에 젖어있던 대다수 일본 사람들이 빈부격차를 감내하는데 많은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이처럼 일본이 1980년대 세계에서 으뜸가는 경제적 평등국가에서 오늘날 세계 수위의 경제적 불평등 국가로 추락하게 된 중요한 이유는 비정규직의 증가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종신고용을 자랑으로 여겼던 일본이지만, 1980년대 이후 미국 따라 하기에 골몰한 결과 이제는 근로자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의 지위로 추락했다.

글로벌 경제체제 하에서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기업에게 있어서 이들은 일종의 제물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위기가 닥치면 이들은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퇴직금이나 연금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들은 해고와 동시에 바로 거리의 부랑자나 노숙자로 전락하고 만다. 과거의 향수 속에서 정신적으로 혼란을 겪는 일부 근로자들은 백주 대낮에 도심에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글로벌 자본주의체제 하에서 경쟁은 어쩔 수 없는 생존의 조건이다. 그러나 경제적 승리를 위해 사회적 공동체가 해체되고 한 국가 안에서 서로 반목하고 원한을 갖게 되는 것이 옳은 길이며, 또한 그 길의 종착점은 과연 행복인가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져야 할 시점이다. 전체 인구의 35%나 되는 5000만 명의 인구가 의료혜택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 미국식의 극한 경쟁이 합리주의보다 정서를 중시하는 동양 사회의 모범 답안은 아니라는 사실이 일본에서부터 설득력을 얻고 있다.

▲ 안상윤 건양대학교 병원관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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