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수요단상]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원숭이들이 모여 사는 산속에 사냥꾼들이 몰려왔을 때 한 마리를 빼고는 모든 원숭이들이 사냥꾼들이 범접하지 못하는 벼랑의 나무 위로 올라가 숨었다. 그런데 유독 한 마리의 원숭이가 피하지도 않고 숨지도 않으며 나무 타는 재주만 믿고 버티고 있었다.

나무 위에서 이가지 저가지로 들락날락하면서 사냥꾼들을 놀려대던 원숭이를 본 사냥꾼은 활을 당겨 원숭이를 노렸다. 그러자 그 원숭이는 날아오는 화살을 잽싸게 낚아채고는 보라는 듯이 해롱거리며 나뭇가지에 매달려 사냥꾼들을 조롱하면서 네놈들은 땅 위에서 활을 쏘아대지만 나는 나무 위에서 네놈들이 쏘아대는 화살을 날아오는 족족 이렇게 잡아 분질러 버린다는 뜻으로 앵앵거렸다.

그것을 본 사냥꾼들이 화가 치밀어 모조리 함께 까불어대는 원숭이를 향해 살질을 하였다. 그러자 비 오듯이 퍼붓는 화살을 한꺼번에 낚아챌 수가 없었던 원숭이는 그만 목에 살을 맞아 나뭇가지 위에서 땅바닥으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결국 변을 당한 원숭이는 나무 타는 재주 하나만 믿고 교만을 떨다가 그만 제명에 못살고 말았던 것이다. 재주가 아무리 빼어나도 교만스럽고 탐욕스러우면 벼랑으로 달아나 숨어 있을 줄 알았던 못난 원숭이만도 못한 법이다.

교만이나 탐욕은 목숨을 앗아가는 제일 무서운 염라대왕과 같다. 교만해서 낭패를 당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고 탐욕해서 망신을 당하는 꼴 역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일이다. 낭패를 보게 하는 교만이나 망신을 당하게 하는 탐욕은 제 잘난 멋의 뒤탈이다. 저만 잘났다는 재주처럼 무서운 함정은 없다. 그러한 함정을 매울 수 있는 것이란 겸손이며 겸허한 몸가짐 이외엔 없다.

겸손하고 겸허한 마음과 행동이 합치는 것을 예(禮)라고 한다. 어느 날에나 지(知)보다 예(禮)를 앞세워 목숨을 편하게 하는 세상일 올까? 까마귀 싸우는 골짜기로 백로는 가지 않는다. 맑은 것이 탁한 것을 만나면 탁해지고 곧은 것이 굽은 것을 만나면 부러지고 만다. 세상은 악한 것이 선한 것을 억눌러 버리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나쁜 것이 좋은 것을 묻어 버리는 꼴이 여기저기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흉보는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부끄러운 세상이 인간을 더럽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인간이다. 산이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며 바람이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의 세상이 잘 되고 못 되는 것은 오로지 사람의 손에 달려 있게 마련이다. 선악을 알아서 짓는 것은 사람밖에 없는 까닭이다. 들에 핀 꽃은 선악이 무엇인지 미추가 무엇인지 모른다. 다만 사람이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할 뿐이다. 그러니 오로지 사람이 문제이다. 결국 사람은 좋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의 길을 굳게 믿고 그러한 길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다워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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