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건양대 교수

[월요일 아침에] 박기태 건양대 교수

차가운 바람 스쳐가는 겨울 빈 들에서면 지난 가을 말 못한 슬픈 고백들이 아린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무슨 사연으로 그렇게 숨 가쁘게 치달으며 살았을까? 이 맘 때쯤이면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의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들 때문에 비로소 자신에게 물을 것이다.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의 시련 속에서 품안 가득히 생명을 간직했던 대지도 계절의 넉넉한 여유를 향유하려고 하는데 한 번도 비워내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 들끓이고 있는 우리의 욕망들이 문뜩 부끄러워진다는 것을... ....

해마다 반복되는 마지막 계절의 여운 속에는 지난 계절의 전설이나 첫 눈에 대한 설레임이 아닌 아스라이 머리에서는 지워졌지만 가슴에 남아있는 미련들은 소리 없는 신음과 시간의 추상 속에서 뜨거운 속삭임으로 우리의 귓전을 파고든다. 그래서 아쉬움도 미망의 욕심도 다 내려놓은 채 세월의 나그네가 되어 겨울 빈 공간에 서서 나만의 겨울을 느껴 보고 싶다. 나를 애타도록 품어주었던 따스한 온기가 이제는 아픔으로 기억될지라도 그 몫은 내 것이어야 함을 알고 싶다. 내가 가질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떠나보낼 것을 위해서, 그리고 성숙하게 떠나보낼 나의 아픈 사랑을 위해서 겨울의 차가움조차 가슴에 품고 녹여야 함을 깨닫고 싶다.

겨울을 사랑하고 싶다. 좀 더 서설을 붙이자며 겨울의 빈 들을 사랑하고 싶다. 모든 것이 차가웁고 삭막하게만 느껴져 생명력이란 찾아볼 수 없는 공간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가만히 귀 기울여보면 결코 메마름으로 남아있지 않는다는 자연과의 어김없는 약속과 생명을 품고 있는 대지의 숨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운 생명을 위한 소망처럼 하늘을 향해 뿜어내는 자연스러운 힘이 한 겨울 서리조차 녹여 영양분으로 만들어 내는 대지의 소망과 사랑을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봄의 씨앗을 받아들일 새로운 생명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겨울의 빈 들이 시리도록 아픈 고통을 견디어 내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러한 것을 배워야 한다. 다시 말해자면 따뜻한 봄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겨울동안 치러내야 할 고통이 있음을 새삼 인식해야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겨울 빈 들의 언저리에 서 있어도 고독함에 허우적대지 않은 것 같다. 겨울 빈 공간에 가득 차오를 믿음, 소망, 사랑을 볼 줄 아는 시야를 틔우기 위해서 두 뺨을 아프게 스치며 쌀쌀하게 비켜가는 바람도 우리 공허함을 일깨어주는 사랑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솜털처럼 흩날리는 눈송이를 보면서 우리는 설레임과 낭만에 도취되어 겨울 빈들에 숨어 있는 심오한 인생사를 망각하는 성향이 농후하다. 물론 나도 ‘까닭 없이 마음에 이는 풍요나 여유’를 피할 길 없어 눈을 좋아한다. 하지만 미당 서정주의「내리는 눈발 속에서」의 ‘괜찮다, 괜찮다’라는 시구처럼 자기 자신을 나지막하게 타이르며 내리는 눈들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자. 내리는 눈발에 편승하여 간직해야 할 소중한 기억들을 자신도 모르게 쉽사리 묻어 버릴 수 있으니까.

그런 까닭에 나는 올 겨울을 오롯이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 눈 속을 걷다가 때로는 빈들에 서서 야트막한 산속의 소나무들도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그 들녘과 산기슭에서 끊임없이 내리는 눈 속에 토해내지 못한 지난날의 슬픈 고백을 읊조릴 것이다. 그래서 잠시나마 마음의 문을 열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행여 나에게 다시 찾아 올 간절한 소망이 묻혀 지지나 않을까 조심스럽게 겨울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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