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련 사회복지사

[백목련] 정혜련 사회복지사

가수 한 명이 문득 떠올랐다. 그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세상을 떠난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의 ‘배호’이다. 한국가요 평론가나 유명한 가수들이 나오면 항상 칭송해 마지않는 그의 이름이 기억에 있었다. 그러나 트로트 장르가 익숙하지 않고, 생전의 모습을 모르는 그를 찾아 들을 일은 없었다. 그랬던 내가 온 도시가 회색빛으로 보이고 아무도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던 어느 날, 무작위로 음악을 재생시키다 그의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게 되었다.

그의 노래가 끝나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잠시 멈추었다. 내가 들은 트로트 중 가장 세련되고 클래식한 음색이었다. 그러면서도 풍부하고 깊은 감정에 내 마음이 설레었다.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는 많지만 배호는 그 이 세상 어디에도 만날 수 없는 그런 특별함이 있었다. 빙 크로스비(Harry Lillis "Bing" Crosby Jr. 1903년 5월 3일 ~ 1977년 10월 14일)나 엘비스 프레슬리(Elvis Aron Presley, 1935년 1월 8일~1977년 8월 16일), 프랭크 시나트라(Francis Albert Sinatra, 1915년 12월 12일~1998년 5월 14일)와 비교해도 그의 빛은 가려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로만 만난 그에 대한 호기심을 누를 길 없어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했다.

배호는 본명 배신웅(裵信雄)으로 중국 산둥성 제남시에서 대한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국민(1912년~1955년 8월 21일)의 아들로 태어나 광복이후 3세에 한국에 들어왔다고 한다. 1958년부터 음악활동을 시작한 그는 후에 12인조 밴드 ‘배호와 그 악단’ 을 결성하기도 했다. 초기 취입했던 곡들은 별다른 히트를 치지 못했지만 1967년 트로트 곡 ‘돌아가는 삼각지’가 크게 히트했고 이때부터 대중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그 이후 주옥같은 ‘안개 낀 장충단공원’, ‘누가 울어’등을 연달아 히트시켰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신장염을 앓아오던 배호는 1971년 11월 7일 29세의 나이에 우리의 곁을 떠났다. 그의 장례식에 뒤따르던 사람이 수백 미터에 이르렀다 하니,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틀림없이 앞 대열 어디에 있었을 것이다. 시대의 요구로 그의 히트작은 모두 트로트 장르이자 사랑과 이별에 대한 노래이다. 만약 그의 감성과 목소리로 다른 장르와 다양한 주제의 노래를 듣는다면 어떨까? 하고 상상하면 더욱 안타깝다.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영상 속에 수트를 단정하게 입고 한 올도 흐트러짐 없는 머리에 스탠드 마이크를 앞에 두고 노래를 부르는 그는 음악으로 시대와 장소를 뛰어 넘어 나를 흔들었다. 그리고 지쳤던 마음을 위로를 받고 나는 회복되었다.

데뷔곡 ‘굿바이’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별과 같이 빛나고 달과 같이 밝고 맑은 내 사랑 그대여 가지 마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 전쟁과 경제개발에 목숨을 걸었던 힘든 시대를 위로했던 그에 대한 우리의 대답에 ‘굿바이’는 영원히 없을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