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회 전 오근장 동장

 

[충청시론] 김복회 전 오근장 동장

사방이 어두워지는 저녁, 홀로 인천공항 버스에 몸을 싣고 버스도 나도 달린다. 그동안 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오늘처럼 혼자 출발하는 여행은 처음이다. 아는 일행 하나 없이 떠나는 여행에 익숙하지 않아 걱정도 되었지만, 16일 동안의 여행을 마치고 보니 완전히 기우였다. 전국에서 모인 45명이 함께 한 치유여행을 멋지게 마쳤다. 처음 보는 사이지만 룸메이트로, 마니토로 만나면서 모두 끈끈한 정을 나누는 사이가 돼버렸다.

이번 산티아고 순례길 치유여행은 필자의 버킷리스트의 하나로 꼭 가고 싶었던 곳이다. 그런 곳인 만큼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지금까지도 가슴이 벅차고 생각만 해도 참 좋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199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기독교 순례길이다. 이 순례길은 11세기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전 구간 중 일부만 걸었지만 정말 특별하고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순례 길은 모두가 비포장도로 많은 이들의 발자국으로 다져져 있다. 걷는 길옆에는 미루나무가 유난히 많다. 미루나무 길을 걸으며 어릴 때 장에 가신 엄마가 과자를 사오길 기다리며, 신작로 너머로 한없이 기다리던 그 때를 생각하기도 했다. 천년 이 넘도록 긴 시간동안 다녀간 수많은 발자국 위에 지금도 끊임없이 찾아오는 발자국들로 붐비는 산티아고 순례길.

순례자들이 고향에서 가져온 돌을 십자가 아래에 두고 소원을 비는 장소로 유명한 폰세바돈의 산 위에 있는 철 십자가에서 우린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1,500고지가 넘는 산은 비바람으로 무척이나 추웠지만, 징소리와 함께 걷기 시작하고 징소리에 따라 멈추었다. 가슴으로 어머니를 부르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소리 없이 외쳐도 속울음이 그치지 않고, 그간 잘못한 것들이 왜 그리 많은지 눈물 콧물 범벅이 된다.

산을 내려오면서 먹먹했던 가슴을 조금씩 덜어낸다. 며칠씩 걷다 보니 발에 물집이 생기고 발톱이 아팠지만 서로 치료해주고 격려하며 걷고 또 걸었다. 30킬로미터의 먼 길을 걷는 마지막 날은 비까지 종일 내렸다. 주변의 꽃나무와 자연경관을 벗 삼고, 뒤에 처진 이를 기다려 주고, 격려하며 걸었다.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목적지까지 순탄하게 갈 수 있었다.

아프리카 속담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그 말을 실천한 여행이었다. 우리가 걸은 일곱 구간 140여 km 걷기를 마치고 산티아고성당광장에서 순례증명서를 받을 때는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혼자 떠나는 것을 염려 했지만 또 다른 좋은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지금까지의 여행에서 느껴보지 못한 뿌듯함도 경험했다.

이번 순례길에서 걷는 것에 대한 묘한 매력을 새삼스레 느꼈다. 순례길 도중 만난 800km 완주를 목표로 걷고 있다는 서울의 중년 여인들에게서 필자는 커다란 자극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산티아고로 잘 알려진 동해안 해파랑 길 770km를 새해엔 꼭 도전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본다. 거친 파도소리와 함께 수려하게 펼쳐진 해파랑 길로 마음이 먼저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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