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법혜 스님·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충청산책] 김법혜 스님·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옛말에 '세금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란 말이 있다. 유래는 이렇다. 중국 춘추시대 말 공자가 노나라의 혼란 상태에 환멸을 느끼고 제나라로 가던 중 무덤 앞에서 슬피 우는 여인을 만났다.

사연은 시아버지, 남편, 아들이 모두 호랑이에게 잡아먹혔다는 얘기였다. 공자가 이곳을 떠나지 않는 이유를 묻자, 여인은 "다른 곳으로 가면 무거운 세금 때문에 그나마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여기서 사는 것이 더 낫다"고 답했다. 이에 공자가 제자들에게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이다"고 했다. 즉,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처럼 현대판 가렴주구를 피해 사람들이 탈출하려 하고 있다.

호질기의(護疾忌醫)라는 말이 떠오른다. 병을 숨기고 의원에게 보이기를 꺼린다는 의미이다. 이 말은 자신의 결점을 감추고 남의 충고를 듣지 않음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현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에 꼭 어울리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포장지로 포장을 한다고 해도, 추락하는 상황을 감출 수는 없다. 최근 국세청이 내야할 세금의 고액·상습 체납자 명단을 공개했다. 1년 넘게 2억원 이상의 국세를 내지 않아 올해 명단이 공개된 체납자 개인과 법인을 발표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공개 인원은 다소 줄었지만, 100억원 이상 고액 체납자는 늘어났고 체납액이 무려 5조 4천73억원이란 천문학적 세금을 거둬들이지 못했다. 그런데 문제는 명단이 공개된 체납자의 상당수가 돈이 없어 세금을 못내는 것이 아니다.

일부는 재산을 은닉한 뒤 호화생활을 누리고 있어 국세청이 체납자들의 은닉재산 추적에 팔을 걷고 나섰다. 국세청은 지난달까지 고액·상습 체납자를 끈질기게 추적한 결과, 1조 7000억원이란 체납세금을 거둬들였다.

이들의 재산 은닉 실태는 성실히 세금을 내는 대다수 국민을 허탈하게 했다. 실례로 양도소득세 수억원을 체납하고 위장전입 등으로 3년간 잠적해 온 한 체납자는 여행용 가방 속에 5만원권으로 현금 5억 5000만원을 숨겨 가지고 다니다 체납징수반에 발각되기도 했다.

또 44억원의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또 다른 체납자도 수십억원대의 분재를 집에서 취미로 키워 오다 적발돼 모두 압류됐다. 정신이 빠진 체납자들이다. 고액·상습 체납자에 대한 추적 조사와 제재가 한층 강화됐으나 일부 고액 체납자는 여전히 뻔뻔스럽게 살아가고 있었다.

국세청은 해마다 고액·상습 체납자의 명단을 공개하고 민·형사고발 등으로 징수에 안간힘을 다 하고 있으나 체납세금 납부는 여전히 부진하다. 그런데도 국세청은 체납자 관리에 여전히 허점투성이를 보여줘 개선 대책이 시급하다.

실례로 국세징수권의 소멸시효를 5년으로 해 비교적 기간이 짧아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흔하다. 최근 5년간 시효소멸로 2000여명이 해외 출국금지에서 해제를 받았다. 자칫 ‘버티면 된다’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는 제도가 됐다.

이래서 조세정의가 바로 서겠는가? 미국은 고액 체납자는 여권 발급 및 갱신을 원천봉쇄하고 악의적인 체납자는 강력한 처벌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국세청은 세금 체납 발생일로부터 1년이 지나고 국세가 2억원 이상인 경우에만 성명(상호)과 체납액 등을 국세청 홈페이지와 관할 세무서 게시판을 통해 공개되고 있다.

때문에 체납자들은 명단 공개쯤은 우습게 알고 버티는 바람에 실효성이 크지 않다. 소멸시효 역시 세금 회피의 수단이 되는 셈이다. 우리도 세금을 내지 않으면 나라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악질 ‘세꾸라지’에 대한 출국금지 해제와 소멸시효는 없애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상습 고액체납자에게는 시효가 다가오면 재차 출금 조치를 내리면 될 일이 아닌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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