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4장 소슬바람으로 바느질을 하며

▲ <삽화=류상영>

"아를 낳을 때까지 내가 신경을 써 줄팅께 먹는 음식도 가려서 먹으라 이 말이여. 음석만 가려 먹는 것이 대수는 아녀. 맘도 좋은 맘만 먹고 있어야 햐. 그래야 착한 아들을 낳지. 괜히 시건방진 생각을 해설랑 집안에 분란 일으킬 생각은 아예 꿈도 꾸지 말고.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겄지?"

보은댁은 각별하게 옥천댁을 배려해 주며 첫 손자를 기다렸다. 손자를 낳게 되면 한 집에 4대가 살게 되는 셈이다. 그 때는 동네 사람들도 무시하지 못할 것 같았다. 지금은 동네사람들이 시아버지 이복만의 눈앞에서는 하인처럼 굽실거리지만 뒤에서는 후지모토의 앞잡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 집에 4대가 살게 되면 보는 눈들이 달라 질 것이라는 생각에 가급적이면 정지 출입도 말렸다.

"우리 집안은 손이 귀한 집이라 손자며느리의 책음이 막중햐. 그랑께 일절 심든 일은 하지 말고, 음석은 좋은 것만 골라 먹고, 드러운 것도 보지 말고 좋은 생각만 하고 있어야 장차 크게 될 인물을 생산할 수 있는 벱여."

보은댁만 손자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보은댁의 시어머니 이원댁도 옥천댁이 증손자를 낳아 줄 것을 은근히 기대했다. 머슴들에게는 몸이 불편한 불구나 환자가 집안 출입을 하게 될 때는 반드시 먼저 자신에게 보고를 하게 해서 옥천댁과 대면을 금지시켰다.

옥천댁은 어른들이 원하는 훌륭하고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하여 지켜야 할 것은 모두 지켰다. 그것은 곧 친정어머니의 당부이기도 했다.

괜히 모양이 삐뚤어졌거나 날짐승이 쪼던 과실, 들 익었거나 철이 지난 과실, 고딩이나 까재, 말고기 같은 거는 먹지를 말고, 비늘이 읎는 생선을 먹으믄 난산을 하게 되능겨. 엿기름과 마늘은 태를 삭이고, 개괴기를 먹으믄 애기가 벙어리가 되는 벱이여, 오리괴기나 오리알을 먹으믄 애기가 거꾸로 나오고, 생강을 먹으믄 육손이를 낳을 수 있응께 금해야 혀.

옥천댁은 임산부가 조심해야 할 것들을 말해주던 친정어머니의 목소리를 생각할 때마다 드디어 나도 어머가 되는구먼. 이라는 것이 절실하게 실감이 났다.

첫 애는 딸이었다.

옥천댁은 자신이 입던 옷을 첫딸인 애자가 입고 있는 모습만 봐도 가슴이 저리도록 행복했다. 친정어머니도 배냇저고리를 입고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볼 때 이처럼 가슴이 저리는 행복을 맛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쯔쯔, 배냇저고리 한 벌 만드는데 돈이 얼마나 들어 간다구……"

하지만 내심으로 원하던 손자가 아닌 손녀를 낳았다고 노골적으로 핀잔을 하는 보은댁의 눈초리를 받는 순간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누비로 된 배냇저고리는 그저 장터나 포목점에서 무명천을 끊어다 그 뻣뻣한 재질을 지우려고 양잿물로 삶아서 천을 부드럽게 해서 만든 옷이 아니다. 자식이 장수하기를 비는 뜻에서 조부가 입던 저고리를 뜯어서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서 만든 저고리다. 그래서 단순한 누비천이 아니라 친정어머니의 숨결이요 따뜻한 손결과도 같은 것이다. 생명이 없는 돌멩이도 만져보고 쓰다듬어 보면 저절로 숨결이 느껴지는 법이다. 베넷저고리도 친정어머니의 손길을 생각하면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저절로 따뜻해지는 천이다.

"니가 모르고 있는 모냥인데, 원래 지지바가 입던 베넷저고리를 입으믄 지지바를 낳는 벱여."

옥천댁은 당신이 원하는 손자를 낳지 않았다고 해서 친정어머니가 만든 베넷저고리를 무시하는 보은댁이 서운했으나 눈썹을 내려 깔고 조용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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