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용 언론인(대전일보사 전 대표이사·발행인)

[신수용의 쓴소리칼럼] 신수용 언론인(대전일보사 전 대표이사·발행인)

지난 2004년 자민련이 왜 패망했을까. 이유는 여러 가지다. 1995년 창당할 때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현장취재를 하며 지켜 본 느낌은 당의 정체성이 모호해서다. 그 하나는 YS(김영삼)로부터 내각제합의 배신을 당한 것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충청도 핫바지를 억지로 꿰맞춰 자민련을 만들었다. 이어 또다시 DJ(김대중)에게 똑같은 일을 당하면서 자중지란도 일어났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이나 정치학자들은 모호한 당의 정체성에 의문을 던진다. DJ와 자민련의 수장 JP(김종필)의 DJP정권이라는 인위적 결합에서 민심이 떠난 것이라는 주장이다. 진보개혁의 YS나 DJ, 보수주의자인 JP는 섞일 수 없다. 예컨대 대북정책만보더라도 DJ는 햇볕정책을 내세워 부국강병, 자주국방을 외친 JP와는 달랐다.

IMF구제금융의 졸업을 위해 내수 진작 차원에서 ‘소비가 미덕’이라는 DJ, 그러나 ‘아껴쓰고 저축하자’는 JP는 이렇게 달랐다. 그런데도 DJ는 대통령이고, JP는 국무총리였다. 뿐만 아니다. 김선길, 정우택, 오장섭, 강창희 등은 JP의 재청으로 DJ정권의 장관도 맡았다.말기에는 DJ정당에서 3명을 임대해와 17석의 자민련이 원내교섭단체가 되는 희한한 일도 있었다.

한동안 개그콘서트의 소재감이 됐을 정도다. 문제는 자민련 총재인 JP가 국무총리로 앉았을 때다. DJ행정부를 감시할 자민련의원들이 처신이 말이 아니었다. 법적으로 ‘야당’이지만 그 구실을 못하니 ‘요당(요상한 당)이라고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JP에어 박태준, 이한동등이 차례로 국무총리에 앉았다. 그러니 자민련 의원들이 JP나 소속당 출신 장관에게 제대로 대정부질의답게 질의를 했을까. 당시 자민련의원들의 대정부질의를 살펴보면 여당인 DJ당 소속의원들보다 더 DJP정권을 옹호했다. 삼권분립이 국가에서 행정부를 감시해야할 개별 입법기관인 자민련의원들이 총재가 국무총리에 대한 질타를 할 수 없는 그 모호한 입장에 짐작이 간다.

그런 뒤 DJ와 JP가 국민들 앞에서 공약을 했던 ‘임기 중 내각제개헌’을 헌신짝처럼 버리니 충청민심이 다 떠났다. 그 뒤 20년 뒤, 문재인 정부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겼다. 국회의장을 지낸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국무총리로 지명한 것이다. 그는 지금의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지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내년 4.15 총선에서 당에서 역할을 할 것이란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이다.

당연히 정치권에서 삼권분립 훼손이란 비판이 들끓고 있다. 정 전 의장은 ‘미스터 스마일’이란 평가를 받는 6선 중진이었다. 장관도 했고, 소속당 당대표도 했다. 아마 문 대통령이 이 총리후임에 정 전 의장을 지명한 것은, 무엇보다 경제 살리기와 협치를 중시한 때문으로 읽힌다. 그는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내는 등 실물경제에 밝고, 당 대표 등을 거치며 원만한 조정 능력을 평가받는 이다.

그런데도 입법부 수장출신을 행정부 2인자로 임명한 것은 삼권분립 정신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상당하다. 인사청문 과정 등을 통해 국민들과 의원들에게 이를 충분히 해명해야한다. 이를 의식해 문 대통령이 직접 청와대 춘추관에 나와 기자들에게 이 사실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입법부 수장을 지낸 분을 총리로 모시는 데 주저함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야당을 존중하면서 국민 통합·화합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즉, 삼권분립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 전 의장의 능력을 높이 샀다는 얘기다. 국회의장은 대통령 다음으로 국가서열 2위로 통한다. 1위는 대통령,2위는 국회의장,3위는 대법원장,4위는 헌법재판소장, 5위는 국무총리, 6위는 여당총재…….이런 서열이다. 법으로 명문화된 것은 아니라도 2위였던 분이 5위 자리로 옮긴 것이다.

이처럼 정 전 의장 국무총리발탁을 둘러싼 삼권분립 논란은 지나칠 일은 아니다. 법조인으로 법무부장관을 지낸 천정배 대안신당 의원 같은 이도 “유신독재 시절에나 있음직한 발상”이라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할 정도다. 자유한국당이나 새로운 보수당의 반응은 성토에 가깝다. 지난주 한국당은 “삼권분립을 파괴하고 의회를 시녀화하겠다는 독재 선언”이라고 격한 여러 건의 반응을 내놨다. 그래서 정 전 국회의장의 국무총리는 국회 인준이 필요한 만큼, 논란이 불가피하다.

또 하나는 그에 대한 참신성이다. 애초 김진표 민주당의원이 유력했으나, 친보수 성향이라는 공격을 받자, 김의원이 총리직을 고사해 무산됐다. 차선으로 발탁된 이가 정 전 의장이다. 우리는 지금, 문재인 정부 들어 심각한 경제, 민생 후퇴를 걱정하는 터다. 때문에 차기 국무총리는 참신한 이가 발탁되어 낡고 현실에 맞지 않은 정책을 다 버리고 참신한 정책으로 새롭게 나가기를 기대했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경제 지표들의 우울함, 우려와 걱정이 배어있는 데도 문대통령과 정부의 생각은 거리가 있는 까닭이다. 대통령이 ‘우리 경제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거나 ‘성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국민이 많다’는 지론이 그것이다.

여기에 청와대 경제참모진들이 ‘연말이면 소득주도성장의 효과가 나올 것’이라는 지난해 주장이 다 겉돌았다. 그래서 과감하고 참신성 있는 총리를 기대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정 전 의장도 이를 아는 듯 “제가 적절한지 고심했지만 국민을 위해 할 일이 있다면 (총리직 수용을) 따지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판단했다”고 고백했다. 또 “경제 살리기와 국민 통합에 주력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국민이 바라는 게 바로 그것이다.

국회청문회 과정에서 치열한 논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삼권분립훼손에다 격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감수해야한다. 그러면서 직면한 경제를 구하는데 힘써야한다. 이제 독주, 독선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기초를 다지는데 국민, 국회와 협업까지 챙겨야하는 것이 그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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