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보 충북교육학회장·교육학 박사

[충청의 창] 심의보 충북교육학회장·교육학 박사

한 해가 간다. 다가오는 새해 새벽에는 새해맞이 종이 울릴 것이다. 도연명(陶淵明)의 싯귀처럼 ‘세월부대인(歲月不待人)’이다. 세월은 멈춤이 없다. 낭비했던 시간들에 아쉬움도 많지만 지난 세월은 후회해도 소용없다. 중요한 시간은 현재이다. 흘러버린 과거에 연연하기보다 현재를 사랑하고 미래를 가다듬어야 한다. 인간됨의 기초인 가정과 학교의 문제가 시급하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가정이 문제다.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생후 7개월 딸을 5일간 집에 혼자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어린 부부가 살인죄와 사체유기죄로 중형이 선고됐다. 20대 미혼모가 3살 딸을 마구 때려 숨지게 하는가 하면 4살짜리 딸을 화장실에 방치하는 등 학대해 숨지게 한 엄마도 있다. 5살 아들의 온몸을 목검으로 심하게 때려 숨지게 한 의붓아버지도 있다.

패륜범죄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오히려 심화되는 듯하다. 슬픈 보도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인간의 기본인 도덕이 너무 쉽게 무너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천륜을 벗어난 패륜범죄가 난무하고, 인륜을 저버린 흉악범죄가 기승을 부린다. 반인간적 범죄는 인간성 상실이 주범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은 가족이 함께 하는 것이다. 곧 천륜지락(天倫之樂)이다.

학교도 문제다. 교육 현장에서 교권 침해를 넘어서 교육 붕괴를 우려한다. 학생과 학부모, 관리자의 욕설이나 폭행, 성희롱 등 교권침해가 해도 너무한다. 교사의 권위가 없는 곳에 교육은 있을 수 없다. 교사에 대한 학생의 신뢰는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고 따르는 데서 유래된다. 교권침해를 해결하고 예방하기 위해 치료, 상담, 법률자문 등 엄중대응을 한다지만 무너진 교권을 살리기엔 역부족이다.

최근 충북에서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교원이 늘고 있다. 군자삼락(君子三樂)의 포기이다. '교권이 추락하고 있다'는 반응과 무관치 않다.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020년 2월 말 명예퇴직을 신청한 교원이 209명으로 지난 2월 말 173명에서 21%가 늘었다. 특히 중등교원의 명퇴 신청이 전체의 79%를 차지했다. 이는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하거나 욕설, 성희롱까지 하는 교권침해와 무관치 않다.

교수들이 추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를 ‘공명지조(共命之鳥)’로 정했다. 공명조의 이야기는 불교 경전에 나온다, 몸 하나에 머리가 둘인 새인데, 두 머리가 질투를 한다. 상대방을 죽이려고 독이 든 열매를 먹이지만 결국은 같이 죽는다는 이야기다. 상대를 죽이고 나만 살고자 한다면 결국 공멸하게 된다는 뜻이다. 올해는 이념과 세대와 계층 간의 대립이 너무 극심하고 불편했다는 이야기도 된다.

남의 일이 아니다. 헤밍웨이(E. M. Hemingway)는 던(J. Donne)의 싯귀, “울리는 종은 너를 위해서도 울리니, 묻지 마라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에서 소설의 제목을 땄다. 종은 조종(弔鐘)이다. 누구도 완전한 섬일 수는 없다. 올 해 섣달 그믐날 밤에 보신각에서는 제야의 종이 울릴 것이다. 이 종소리와 함께 미움이 사랑으로, 슬픔이 기쁨으로 변했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천륜지락과 군자삼락이 회복되는 사회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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