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묵직하다. 사흘이 넘도록 화장실을 들락거렸지만 당최 소식이 없다. 나흘을 넘기고서야 겨우 토끼 똥 만 한 것을 서 너 개 떨어뜨렸다. 위암검사를 했는데 조영제 성분 때문이란다. 변비약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싶어 닷새째 되는 날 변기에 걸터앉아 싸늘한 아랫배를 마사지 했다. 배에 온기가 느껴지는가 싶더니 후장이 찢기는 통증이다.

그동안 과일로 식사를 대신하기도 했었다. 일터에서 잠시 휴식을 가질 때엔 화장실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인기척에 자리를 비워주어야 했다. 배출이 되지 않으니 음식을 넘기기가 어렵다. 몸에서 분뇨냄새가 나는 것 같고 속은 메스껍기까지 했다. 방귀라도 시원하게 뀌면 후련하겠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배설을 하지 못하니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 비단 사람에게만 국한되었을까. 동물도 그러거니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도 마찬가지이지 싶다. 이롭다하여 정신없이 삼키다보면 한쪽으로 치우치고 소화를 시키지 못한다. 골고루, 적당히 먹어야 됨을 알기에 욕심을 부린 것도 아닌데 고통이 따른다. 그러고 보니 요즘 젊은이들의 사라진 꿈이 그렇고 불혹의 가장들이 경제활동에서 떠밀려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단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열심히 일하던 그들이 바둑판처럼 정리된 노동의 터전에서 함부로 발을 옮기지 못한다.

기류에 떠밀리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혹은 부푼 꿈을 안고 들어선 자영업의 길은 날이 갈수록 일하는 시간은 길어지고 소득은 줄어든다. 행여나 좋은 소식은 없는지 목도리도마뱀처럼 주위를 살피고 있다. 그도 지치면 아예 눈을 감고 감촉만으로 손을 움직인다. 반수면 상태인 것이다. 독한 감기약을 먹었을 때처럼 휘청거리며 간신히 자리만 지키고 있다. 그들은 씻기도 귀찮은지 머리에 기름기가 엉겨 있어도 며칠을 버틴다. 외모도 경쟁력인데 노력하지 않는다고 타박하는 이도 있다. 어느 기준에서는 청결하지 못한 것이지만 속사정을 듣고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사람이 음식을 섭취하고 배설하는 것은 자연스런 섭리이다. 누구든지 이 단계를 거치지 않고 생명을 유지 할 수 없다. 어렸을 적에 선생님은 화장실을 가지 않을 것이라 여겼었다. 쉬는 시간에 의복을 가다듬으며 화장실에서 나오는 선생님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참으로 순진무구했었다.

조선시대의 왕은 복이 상궁이 보는 앞에서 매화틀에 앉아 볼일을 보았으며 변을 본 후에는 상궁이 비단 천으로 닦아주었다고 한다. 전의감은 눈과 손가락으로 왕의 변 상태를 확인하여 건강을 짐작했으며 미심쩍으면 맛을 보았단다. 타인 앞에서 변을 보는 법도 대단하고 그 앞에서 일을 본 임금도 놀라울 뿐이다. 더구나 전의감이 임금의 변을 맛본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책임감이 강한 어의임은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사회는 시민이 행복감을 얼마나 느끼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스템이 실종된 것 같다. 복이 상궁과 전의감처럼 영양상태가 적합한 음식을 섭취하며 적절한 시기에 배설하는지 관심을 가져주면 조금은 더 가볍고 따뜻한 겨울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