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 전 언론인

[김종원의 생각너머] 김종원 전 언론인

삼국지 이야기 한 토막. 조조와 원소의 관도대전에서 조조가 승리한 뒤 전쟁 뒤처리를 하는 자리. 조조는 전시에 자신을 규탄하는 격문을 쓴 진림을 붙잡아 심문(審問; 조사하기 위하여 자세히 따져 물음)한다. 관도대전에서 진림이 쓴 ‘토조조서’를 읽은 조조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굴러 떨어질 정도로 놀랐다. 그 만큼 격문의 강도가 셌다. 격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공 조조의 조부 중상시 조등은 좌관, 서황 같은 환관들과 한 통속이 되어 극악무도한 짓을 다했고, 더럽게 재물을 긁어모으고 거칠 것 없이 날뛰어 세상의 풍속을 썩게 하고 백성들을 못살게 굴었다. 조조의 아비 조숭은 본래 거렁뱅이로 문전걸식을 하다가 환관의 양자가 되어 뇌물을 주고 관직을 사고, 금은보화를 수레에 싣고 권문세가에 뇌물을 바쳐 삼공의 지위를 도적질하여 사직의 커다란 우환이 되었다. 조조는 더러운 환관의 자손으로서 원래 아름다운 덕을 갖추지 못했으면서도 교활하게 협행을 꾸미며 어지러움을 좋아하고 화를 일으키기를 즐겨했다.”

조조는 진림에게 격문과 관련, “네가 지난날 원소를 위하여 격문을 지을 때, 나의 죄상만 밝히면 그만이지,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까지 욕할 것은 없지 않았느냐.”고 호통을 친다.

사실, 진림의 격문은 조조가문을 ‘만고의 역적’으로 규정하며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집안으로 적었는데, 적에 대한 격문이라도 과한 측면이 있었다. 이에 대해 진림은 “화살이 시위에 얹힌 이상 나아가지 않을 도리가 있겠소이까”라고 답한다. 조조는 껄껄껄 웃으면서 진림을 풀어준다.

이 일화는 실화라고 한다. 진림은 조조 휘하에서 벼슬을 얻어 일했고, 당시 중요한 국가의 포고령과 군사문서, 격문 등을 썼다고 한다. 진림이 재치있게 ‘화살’ 비유를 들어 자기합리화를 한 것을 다시 강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우리가 주의깊게 봐야할 부분은 조조의 적재적소 인사 기용이다. 다른 편이었더라도 능력이 뛰어난 인재를 버리지 않고 사용하는 방법. 사실, 조조 입장에선 진림이 ‘죽일 놈’ 이었을 것이다. 조상 욕까지 해가며 자신을 규탄하고, 핏줄을 모욕하는 방법으로 격문을 만들었으니, 조조 입장에선 피가 거꾸로 서는 분노를 느꼈을 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용을 했고 더 나아가 인재등용까지 했다. 그 포용력과 인재등용이 나라 운영에 필요한 것이다. 이를 통해 나라가 강해진다. 그때나 지금이나, 중국이나 한반도나 사람을 어떻게 쓰느냐가 결국은 흥망성쇠를 가른다.

국정운영을 책임지는 리더의 임무는 인사문제로부터 시작해 인사문제로 마무리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편 네편 가르다보면 인재등용은 점차 멀어진다. 내편조차도 그 안에서 갈등이 생기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가 겪었던 갈등도 인사문제로부터 시작됐다. 한해를 시작하면서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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