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건양대 교수

[월요일 아침에] 박기태 건양대 교수

2020년 새해가 밝아왔다. 그리고 저문 하늘 속으로 가라앉은 노을처럼 내 뜨겁던 2019년 삶의 열정은 순식간에 과거 속으로 파묻혀 버렸다. 굳이 어떤 서설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아쉽게 지나가 버린 것에 대한 여운이 남는 듯하다.

그렇지만 아직도 많은 바램들을 간직한 포근한 가슴이 있음에 그런 아쉬움을 비유하고 유추해내며 나는 2020년 다시 깨어 날것을 다짐해 본다. 그리고 창밖을 스치는 세찬바람 속에서도 어둠을 뚫고 떠오르는 태양의 찬란한 빛처럼 다시 피어오를 나의 열정에 응원을 기원하며 낮은 목소리로 속마음을 말하고 싶다.

살아가면서 스스로 빛이 되고자 노력하는 일은 얼마나 눈물겹고 가상스러운가! 사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작고 가느다란 빛이라도 좋으니 정녕 어둠이 내려앉지 못하는 온전한 빛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것을 훼방하고 좌절시키는 것은 바로 우리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잘못된 편견 일 것이다. 자신만의 범주 속에서 제멋대로 생각하며 타인을 도외시하고 심지어 이기적인 생각을 막무가내로 뇌 깔이면서 자신은 물론 타인들까지 상처를 주고받는 행위들 ... 나 역시 세월속의 나그네인 까닭에 세속적인 일들에 어쩔 수 없이 편승하여 방황한 적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그래서 해마다 이맘때면 새로이 다짐을 하며 희망을 노래하는지 모른다.

언젠가 나는 사람을 완전히 좋아하지도 못하고 순수하게 사랑하기도 어려워서 절망에 빠져 무척 허우적거린 적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내 어둠을 극복할 수 있는 작은 빛 하나를 발견 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빛이 아니어도 빛을 발산 할 수 있는 방법이었는데, 다시 말하자면, 일탈하지 않은 삶속에서의 섭리에 순응한 것만이 스스로의 빛을 반사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섭리에 순응하고 어둠에서 빛 바라기’는 아마도 그지없이 쉬운 일인 듯하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살아가는 동안 풀지 못한 숙제처럼 남을 것이다. ‘어둠에서 빛을 바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자. 그것은 자신을 철저하게 바라보는 일이다. 자신을 좀 더 먼발치에서 냉정하고 철저하게 대면하면 어둠속에 떠오르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다 그 깊은 속 어딘가에서 빛을 염원하는 간절한 마음 하나가 있음을 깨달을 것이며, 자신에게 온 그 빛으로 말미암아 자신도 빛이 될 수 있음을 알았을 때 느끼는 황홀감이 비로소 진정한 빛 바라가기의 의미가 될 것 이다.

자신의 어둠을 부분적으로 보았을 때는 무척 애처롭고 실망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전부를 어둠일 수밖에 없다고 인정 한다면, 빛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은 조금도 서글프게 하는 것이 아님을 마음속에 새겨보자.

새해의 부푼 꿈을 그려보는 매년 초에는 다시 초연의 마음가짐으로 처음부터 천천히 욕심을 내려놓고 겸손과 낮아짐으로 자신을 맞이하면서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사랑하자. 지금껏 아껴왔던 버킷 리스트를 하나씩 꺼내어 자신에게 선물해보자. 그리고 지금까지도 괜찮았고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자신을 토닥여 주기도 하자.

마지막으로 2020년 올해도 꿈을 향해 어둠 속에서 빛 바라기를 간절히 원한다면, 자신의 빛도 어둠에 나누어 줄 수 있음을 마음속 깊이 새기면서 빛과 어둠의 근사한 진실을 깨닫길 바란다. 그것과 더불어 많은 시간들을 두루마리처럼 가져온 달력에 하나하나씩 의미 있는 일들을 채워가며 모든 이들이 올 한 해는 사랑과 행복, 그리고 멋진 추억들로 흠뻑 물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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