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법혜 스님·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충청산책] 김법혜 스님·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서울 홍대 앞에 가면 '아티누스'라는 예술 전문 서점이 있다. 이곳 서점에서 백년 달력을 팔고 있다. 달력은 커다란 포스터 형식인데 신문을 펼친 것보다도 좀 크다. 큰 종이 한 장에 2001년부터 2100년까지 3만6천500일의 100년 달력이 빽빽이 인쇄되어 있다,

그 달력 속에 필자도 알 수는 없지만 어느 날 사라질 것이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필자도 살날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죽는 날이 분명 이 백년 달력 안에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메멘토 모리(네 죽음을 기억하라)’의 형상을 본 듯 시간이 날카롭고 선명하게 느껴지게 했다.

이런 생각지 못한 희한한 달력이 있는가하면 인디언들은 달력을 만들 때 자연의 변화를 주제로 1년 열두 달의 달력을 만든다고 한다. 물론 부족마다 좀 다르게 달 이름이 불러지지만 모두 자연의 변화에 친밀하게 반응됐다는 것이 이색적이다. 또 인디언 풍카족은 12월을 ‘무소유의 달’, 주니족은 ‘태양이 북쪽으로 다시 여행을 시작하기 전, 휴식을 위해 남쪽 집으로 떠나는 달’, 수족은 ‘나무껍질이 갈라지는 달’이라고 붙였다.

모든 것을 다 비워내고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이란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그들이 붙인 달력의 매달 이름들은 왠지 내면을 돌아보게 지었다. 1월은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 3월은 ‘강풍이 죽은 나뭇가지 쓸어가 새순이 돋는 달’, 5월은 ‘오래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 7월은 ‘열매가 빛을 저장하는 달’ 등의 월력명을 붙였다고 한다.

1년 열두 달이 행복하려면 작은 것에서 느낄 수 있는 ‘영적 민감성’과 ‘감사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최근 한 해를 뒤돌아보는 의미에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송년 모임을 흔히 볼 수 있다. 송년 모임으로 한 해를 되돌아보는 것도 그렇지만 열두 번의 월급날이 기다려지듯 평소 감사의 마음을 갖고 생활하자. 우리가 살아가면서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다름 아닌 늘 감사하며 사는 일이다.

성직자들처럼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생활화 되어야 한다. 그래서 어느곳에서나 하루 열두 번 감사하는 마음속에서 살아야 한다. 하루에 열두 번 감사하면 삶이 행복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감사는 이런 것이다. 누구든 아침에 일어나서 ‘새날을 맞으면 감사'하고,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감사하면 된다. 또 일터에서 ‘일할 수 있는 건강을 준데도 감사’하고, ‘일하는 보람에 감사’하며 일과 후엔 ‘작은 성취감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저녁 식사할 때 ‘함께 식사할 수 있어 감사’하고 신문과 책을 보면서 ‘여가를 준데도 감사’함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잠자리에서 ‘하루를 평안하게 인도해 준데도 감사’하고 꿈속에서 ‘생명을 준 은혜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일상의 훈련을 통해 긍정적이고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닫혀 있던 사람들과의 관계도 회복될 것이다. 또 소통할 수 있는 기쁨을 맛보며, 삶의 불안이 사라지는 것도 느낄 것이다.

소소한 것에서 우리는 감사함을 느끼고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삶이 달라질 것이다. 행복하려면 일상생활을 통해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자연의 변화에 민감하고 영혼이 맑게 깨어있을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인 민감성이 필요하다. 기도하는 중에 영적 민감성이 개발되고 민감한 사랑이 행복한 사람으로 변화할 것이다. 행복이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조건들을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 인생의 소소한 기쁨을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다. 행복도 내가 창조하자. 행복은 가족, 공동체,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 쾌적한 환경처럼 달콤하다. 때문에 어떤 하루를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이 하루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누군가를 증오해서는 안 된다. 백년 달력 안에 나의 행복의 날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색 연필로 그리고, 인디안 달력처럼 화려한 꿈이 매달 소원성취하는 뜻이 담겨 있듯이 생각대로 이뤄지는 일생의 삶이 되기를 새해 경자년을 맞으며 우리 모두가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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