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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아카데미이광표 서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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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09  10:3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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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이광표 서원대 교수

며칠 전, 대전을 찾아 원도심을 걸었다. 대전역 근처에 다다르자 먼발치로 ‘아카데미 극장’이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반가운 이름, 그러나 지금은 문을 닫은 극장이다.

가까이 가보았다. 대전역 바로 앞인데도 영화관 주변은 스산했다. 정문 간판에는 여전히 ‘Academy Cinema(아카데미 시네마)’란 알파벳이 선명했지만 주변엔 차단막이 쳐져 있었다. 출입구 위쪽으로는 몇 년 전 걸었던 영화 포스터 여러 개가 빛바랜 채 걸려 있고, 바로 옆으로는 ‘건물 매각’이라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1층 필로티 주차장엔 담배를 피우는 노숙자가 보였다.

대전 아카데미극장은 1964년 동양극장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이후 아카데미극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대전의 최고 인기 극장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몇몇 대기업이 복합상영관(멀티플렉스)을 내세우며 영화관 시장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복합상영관으로 몰렸다.

이같은 추세에 발맞추고자 아카데미극장은 리모델링을 거쳐 2002년 9개의 스크린을 갖춘 복합상영관으로 변신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관객들은 대기업 복합상영관을 선호했고, 대전역 근처 원도심을 찾는 사람들 자체가 자꾸만 줄었다. 아카데미극장은 2013년 스크린 수를 줄였고 2016년 7월 31일 끝내 영업을 마감했다. 그리곤 5년째 방치돼왔다.

사실 10~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도시엔 아카데미란 이름의 극장들이 있었다. 대체로 그 지역을 대표하는 극장들이었다. 하지만 아카데미란 이름의 극장은 거의 사라졌다. 그것이 단관이든 복합상영관이든, 그것이 대도시에 있든 중소도시에 있든, 대기업의 복합상영관을 감당할 수 없었다. 한국을 대표했던 서울의 단성사(1907년 개관)도 2000년대 들어 건물을 다시 짓고 복합상영관으로 바꾸는 등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으나 결국 문을 닫지 않았던가.

강원도 원주의 아카데미극장도 사정이 비슷하다.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 문을 열었다. 몇몇 극장들과 원주의 대표적 단관 극장으로 사랑받았다. 하지만 2005년 원주에 대기업 복합상영관이 생기면서 이듬해인 2006년 아카데미극장을 포함한 단관극장 4곳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문을 닫은 극장들은 모두 철거되었지만 다행히 아카데미극장은 헐리지 않았다.

소유권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오랜 기간 방치된 탓에 일부 훼손되고 먼지가 쌓였지만 내부 모습은 지금도 옛 영화관 그대로다. 원주시민들은 2016년부터 아카데미극장 보존 활동을 시작했다. 원주시도 소유자를 설득해 건물 매입 등 보존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언제 순식간에 헐릴 지 모를 일이다.

대전 아카데미극장이 소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물론, 이 극장을 꼭 되살려야 한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세상의 변화를 애써 부정한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아카데미극장은 영영 사라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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