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법혜 스님·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충청산책] 김법혜 스님·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새해가 오면 새로운 다짐을 하는 시무식 등이 나름대로 기관, 기업체별로 떠들썩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 신년회의 모습이 크게 달라졌다는 얘기가 꼬리를 물고 나온다. 그동안 새해에 기관, 기업체들은 딱딱한 분위기의 시무식을 했는데 올해는 짧은 프레젠테이션으로 바뀌었고, 최고경영자(CEO)의 신년사도 역시 영상이나 이메일로 대체되는 등 신년회 분위기가 몰라보게 변했다고 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획일적이었던 행사와는 달리 회사의 경영철학과 개성이 잘 드러난 실감나는 다짐의 자리로 바꿔졌다. 실례로 현대자동차그룹의 신년회는 의례적인 형식이나 정해진 식순 없이 자유로운 ‘새해맞이 모임’ 성격으로 10여 분 만에 끝났다. ‘떡국과 덕담’에 직원들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시무식은 모바일로 생중계돼 임직원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한 점도 눈길을 끌었다.

SK그룹은 ‘회장 신년사’를 없애고 신입사원과 고객들을 무대로 모셨다고 한다. 최태원 회장은 무대 아래에서 입 대신 귀를 열었다. 또 사옥 인근 식당 종사자와 기관투자가, 청년 구직자, SK에 근무하는 임직원 자녀, 워킹맘의 어머니 목소리도 영상으로 듣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시무식 자체를 아예 없앤 곳도 있다. LG그룹은 강당 시무식 대신 경영진의 메시지가 담긴 영상을 전 세계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보냈다. CJ그룹은 사내 방송으로 전 세계 임직원과 신년 인사를 나눴다.

이처럼 신년회 분위기가 자유로워졌지만 CEO들의 새해 메시지에는 절박한 마음이 배어났다. 핵심 키워드로 ‘위기’ ‘생존’ ‘변화’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했다. 경영학계는 “국내외 경기부진으로 지난해 보다 경영환경이 어려워질 것을 예감한 기업들의 안팎 고민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는 분석이 그래서 나왔다.

이같은 변화에 공감하면서 “확 달라진 신년회 만큼 성과가 늘어나고, 고객 행복과 직원 만족이 동시에 이뤄지면 더 좋겠다”고 기대하기도 했다. 이들의 반응 중에는 “기업들의 변신 몸부림에 비해 정부의 경제정책과 신년회 풍경은 달라진 게 없어 유감”이라는 따끔한 질책도 튀어 나왔다.

유럽쪽의 얘기를 해보자. 유럽에서는 1년 중 가장 큰 명절인 크리스마스를 맞는 분위기다. 이곳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되기 1주일 전부터 많은 사람이 바빠지는 분위기로 변한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휴가를 내기도 하고, 학교는 잠시 쉬기도 한다.

이처럼 바쁜 이유는 가족과 가까운 친척, 친구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모임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이브 3일 전에는 친구와 저녁, 2일 전에는 시누이, 1일 전에는 친척 여자들끼리 모임 등 이런 식으로 12월 31일까지 바쁜 날들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같은 모임이 모두 집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 모임을 위해 식사 음식도 만들어야 하고, 술도 준비해야 하고 또 디저트 역시 준비해야 한다. 심지어는 케이크도 사지 않고 집에서 만들 정도다. 이 때 초대받는 사람들이 디저트와 자기가 마실 술 등의 음식을 가지고 오기도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오래 전 한국 사람들이 명절을 지낼 때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친구 친척과 어울리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신기한 건 서구의 사람들은 이런 풍습과 습관이 오랜 시간 동안 변화하지 않은 것 같다.

2020년 새해가 되었다. 올해는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목표를 세우는 대신, 우리도 예전으로 돌아가는 목표를 세웠으면 한다. 명절, 생일 등의 행사도 집에서 더 부지런히 챙겨서 자리를 마련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기관, 기업체의 시무식처럼 우리 일반 가정에서도 귀찮음이 따르겠으나 검소하고 다정다감한 모임의 자리처럼 변화가 있으면 하는 데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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