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시인

[박별칼럼] 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시인

새해가 되면 제일 먼저 강을 따라 걷는다. 그 중에서도 이름도 아름다운 금강물결을 사랑한다. 금강은 남한에서 세 번째로 큰 강으로 전북 장수 신무산(神舞山)에서 발원하여 무주·영동·옥천 등 굽이굽이 여러 고을을 흘러 서해 군산항 쪽으로 흘러가기에 어디를 가더라도 금강줄기를 살피며 애타게 바라본 적이 많았다. 내륙의 바다 대청호를 이루고 공주를 지나 부여에 가면 ‘백마강’이라는 역사와 추억의 강으로 한국인이면 누구나 그 강에 발길을 멈추게 된다

2020 아직 걷지 못한 금강변 대신 가람문학관을 찾아가 보았다. 가람은 강의 순수 우리말로 이병기 시조시인의 생가와 어울려 있다. 학창시절 부르던 가곡 ‘별’과 창, 젖 등 명시를 사모하며 늘 그리던 곳이다. 2017년 10월에 개관했다는 정보를 얻고 논산 연무대를 스쳐지나 익산시 여산면 가람 1길로 꿈길처럼 달려간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앞에 나섰더니

서 산 머리에 하늘은 /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달이/ 별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 어느 게요

잠자코 홀로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연시조 별 전문-

예의 그 가곡이 조용히 흘러나오고 있다.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생가는 마침 방문객이 하나도 없어 더욱 고즈넉하다. 생가주위 사람 하나가 엎드려 무엇을 하고 있다. 그가 누구일지라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건네보았다. 살짝 인적상황을 여쭈니 가람선생의 손자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표정이 가람과 많이 닮았고 순수하고 점잖은 기색이 넉넉하다. 그의 손을 잡았을 때 늘 바라만 보던 별을 처음으로 가슴에 안아보는 인간적 문학적 전율이 스며온다. 마치 가람이 살아서 걸어 나오신 것처럼. 손자는 잇따라 걸으며 생가 이모저모를 설명해준다.

선생이 태어나고 말년에 4년간 지내시던 사랑채 ‘수우재(守愚齋)’는 가람의 사람됨을 한 눈에 보여주는 것이다. 연못인 우담, 지킴이 우석 등 선비다운 고고한 가풍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슬기를 감추고 겉으로 어리석은 체 하는 수우의 의미는 오로지 한글과 나라를 사랑하여 교육자, 서지학자, 독립운동가 나아가 우리고유의 문학인 시조의 부활을 위해 애써온 평생을 지조있는 선비로 살아온 가람의 풍취를 지닌다. 1920년 가람은 호를 통하여 영원과 완전과 조화를 갈망했으니 아름답고 끝이 없는 푸른 강물이다.

몇 년 전 시인으로 등단할 때 나의 필명을 ‘박별’로 하였다. 별의 시인 윤동주를 흠모하고 부족하나마 그의 뒤를 따르자는 간절한 소망에서. 또 한사람의 별의 시인 가람을 만난 것은 바라만 보던 별을 가슴에 안아본 첫 감격이다. 가람은 19세부터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58년간 일기를 쓰셨다니 그 또한 감동이다.

별하나에 동경과 별하나에 시와 별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경자년 독자들에게도 시와 어머니를 생각하는 날이 가끔 찾아와주기를 소원해보는 새해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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