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4장 소슬바람으로 바느질을 하며

▲ <삽화=류상영>

옥천댁은 누런색의 무명을 광폭으로 넉넉하게 두 필 끊었다.

그것을 햇볕이 좋고 바람이 좋은 날 양잿물로 푹푹 삶으니까 누런색이 하얗게 바랬다. 배냇저고리를 하얀 천으로 만드는 이유는 흰색은 고결, 순결, 순수의 상징과 함께 밝음, 영원, 불멸, 재생 등을 상징하는 신성색神聖色이다. 하얗게 바랜 무명천을 마당에서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 바짝 말려서 손이 없는 날이 되기를 기다렸다.

옛날 사람들은 귀신이 날짜에 따라서 각각 다른 방향에서 사람이 하는 일을 방해한다고 믿었다. 초하루와 이튿날은 동쪽, 사흘 날과 나흘 날은 남쪽, 닷샛날과 엿샛날은 서쪽, 이렛날과 여드렛날은 북쪽에 있다. 날짜로는 9·10·19·20·29·30일은 귀신이 하늘로 올라가기 때문에 손이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사를 하거나 먼 길을 떠날 때는, 혹은 중요한 일을 결정하거나 시행하려고 할 때는 손 없는 날과 방향을 택했다.

옥천댁은 손이 없고 볕 좋은 날을 골라서 무명을 잘 말렸다. 다시 그것을 다듬이 질하고, 말리기를 여러번 해서 명주천 처럼 부드럽게 만들었다.

"배냇옷을 맨들 때는 정성이 들어가야 햐. 몸과 맴이 하나가 되어서 옷을 맨들어야 난중에 훌륭한 자식을 보게 되는 거여."

옥천댁은 친정어머니가 만들어 주었던. 이제는 자신이 체온에 이어서 애자의 체온까지 스며들어 있을 배냇저고리를 방바닥에 반듯하게 펼쳐 놓았다. 그것을 옷본 삼아서 두 번째로 태어 날 아이의 배냇저고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배냇저고리는 남자들이 입는 저고리와 다르게 깃이 없다. 아이라서 목과 어깨의 경계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깃이 없어서 '깃저고리'라고도 부르는 배냇저고리의 '배내'는 배를 뜻하는 말이라서 배를 가리는 옷이라는 뜻의 '배내옷'이라고도 부른다.

옥천댁은 정성을 깃들여 만든 저고리에 고름을 달지 않았다. 그 대신 태어 날 아이가 무병장수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실을 일곱 가닥 길게 늘어트려 고름을 대신했다. 단추나 고름이 없는 대신 실로 만든 고름 대용은 허리를 감아서 고정시킬 수 있도록 한쪽 길게 만들었다. 소매도 손톱으로 물빛처럼 투명한 살결에 행여 생채기라도 낼까봐 손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길게 늘어트렸다.

밤을 하얗게 새워서 배냇저고리를 만든 옥천댁은 둘째가 입을 배냇저고리를 만든 다음에 친정어머니가 만든 배냇저고리는 버리지 않기로 했다. 오래되어서 낡았다고 걸레로 사용하게 되면 잘 크고 있는 첫째 애자에게 부정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옥천댁이 밤을 꼬박 새워서 만든 배냇저고리는 증조모인 이원댁이나 시어머니인 보은댁이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를 한 보람도 없이 손녀의 몫이 되고 말았다.

"옛날부터 아들은 하늘이 내린다고 했다. 우리 집안이 망해가는 집안도 아니고, 한 해가 다르게 번창해 가는 집안에 아들을 점지해 주지 않는 거는 정성이 부족해서 그런 거 가텨. 조석으로 맘으로 기도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성도 들여야 하는 벱이여."

옥천댁이 두 번째도 딸을 낳자 이원댁과 보은댁은 본격적으로 아들을 낳은 비방을 쓰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가 학산에 있는 점쟁이 꼬막네가 구해 가지고 온 돌가루다. 돌가루는 3대를 포함해서 아들이 열다섯 명이나 된다는 집안 증조부의 비석을 징으로 깨트려 빻은 가루였다.

"그 머셔, 느 시아버지도 그라는데 먼 일을 하든지 큰 일을 할 때는 유비무환이 최고라 하드라. 이거 비싸게 주고 구입한 보약인데 냘 아침에 목욕 재게한 담에 물에 타서 먹어라. 그람 틀림읎이 아들을 낳는다고 하드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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