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충청시평] 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초에 역사적 의미가 큰 사적지 몇 군데를 찾아 나섰다. 강화 광성보는 조선의 민초들이 1871년 일어난 신미양요를 온 몸으로 버텨낸 곳이다. 거기에 당시의 절박했던 상황을 상기시켜 주는 두 비가 의젓하게 서 있다.

강화해협을 따라 용머리처럼 돌출된 자연 암반 위에 설치된 천연적 교두보인 용두돈대. 그 중앙에 1977년에 세운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가 있다. 전면의 비명은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고, 후면의 비문은 이은상이 짓고 김충현이 썼다.

신미양요 때 조선군 지휘관 어재연 장군과 아우 어재순 그리고 군졸들은 미국군을 상대로 용감히 싸우다 장렬하게 순국했다. 두 형제를 기린 쌍충비 옆에 1978년에 세운 ‘신미양요순국무명용사비’가 있다. 전면의 비명은 김충현의 글씨다. 후면의 비문은 리선근이 짓고 역시 김충현이 썼다. 두 비의 전면 비명은 한자로 썼으나 후면 비문은 정연한 궁체 정자로 또박또박 띄워 썼다. 그 앞에 서서 비문을 읽으니 당시의 무명용사들이 떠올라 저절로 숙연해졌다.

삼국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경주 남산에 만들어진 통일전에도 여러 비가 있다.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진 태종 무열왕,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문무왕, 삼국통일에 실질적으로 크게 기여한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가장 놓은 곳에 위치한 통일전에 나란히 봉안되어 있고 그 아래에 그들의 사적비도 나란히 서 있다. 사적비 맞은편에 1977년 이은상이 짓고 김충현이 쓴 ‘삼국통일기념비’가 있고, 가장 낮은 입구에 1979년 김영하가 짓고 김충현이 쓴 ‘삼국통일순국무명용사비’가 있다. 다섯 비 가운데 비문이 절절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역시 무명용사비다. 그들의 순국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새해가 되면 정치인들이나 고위 공직자들은 어김없이 국립현충원을 찾는 것으로 한 해의 업무를 시작한다. 정초가 아니라도 새로 임명된 고위직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이들은 조국을 위해 몸 받친 무명용사들의 탑 앞에 헌화하면서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노라 다짐하고 방명록에 기록도 남긴다. 이는 국민의 뜻을 높이 받들겠다는 의미다. 민심은 천심이니 국민이 곧 하늘임을 그들도 익히 알고 있다.

이제 2020년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출사표를 던진 정치인들은 한 표를 얻기 위해 국민의 충복이 되겠다며 적극적으로 자신을 홍보할 것이다. 그들이 선거 후에도 앙천의 자세로 국민을 받드는 공복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지만 번번이 그들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면서 실망하곤 한다.

그래도 역사 속 무명의 순국자들을 대하듯 경건한 마음으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정치인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들이 끝까지 초심을 유지하여 만인의 존경을 받게 되기를 고대한다. 진정 애민하는 정치인이 많으면 팍팍한 우리네 살림살이도 견딜 만하고 가슴에 응어리진 것도 풀릴 것이다. 그들이 하늘을 저버리지 않으면 하늘은 반드시 그들을 응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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