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수요단상
도망가서 죽은 궁예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충청일보  |  webmaster@ccdaily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01.28  13:57:48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수요단상]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천 년을 넘어가는 사직은 없는 모양이다. 신라는 천 년을 바라보면서 꺼져가는 불꽃처럼 신라 정신을 밝히는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통일을 이뤄 영토가 넓어지기는 했지만 큰 덩치를 이끌어 갈 정신과 힘이 모자라게 되었던 모양이다. 나라가 코끼리처럼 크면 병통이 생겨도 알기가 어렵다.

코끼리는 생쥐를 제일 무서워한다. 생쥐가 코끼리의 어느 부위를 갉아먹기 시작하면 덩치 큰 코끼리는 아주 작은 생쥐를 어떻게 공격해 볼 수가 없다. 덩치가 큰 나라에는 생쥐 같은 무리들이 이 고을 저 고을에서 날뛰게 마련이다. 신라의 말기에도 이러한 생쥐들이 들끓었던 모양이다.

고을마다 도적들이 횡행하여 선량한 백성이 편안히 살 수가 없었지만 신라는 맥이 빠져 병들고 늙은 코끼리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그때 자기가 미륵불이라고 외치면서 백성들의 호감을 샀던 두 사람이 있었다. 하나는 견훤이고 다른 하나는 궁예였다. 미륵불이란 세상을 구하려고 오는 부처를 말한다. 동양의 메시아를 미륵불이라고 한다. 궁예는 신라의 여러 고을을 쳐서 자신의 영역으로 만든 다음 후고구려라고 칭하고 스스로 임금의 자리에 올랐다. 그렇다고 완전한 나라의 틀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몇몇 고을을 점령한 정도였을 뿐이다. 나라도 없는데 임금을 하겠다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헛욕심에 불과했다.

그러나 궁예는 모든 사람을 의심하면서 임금의 자리를 빼앗길까봐 포악한 짓을 가리지 않고 저질러댔다. 임금의 자리를 넘본다고 아내를 쳐 죽이고 임금의 자리를 탐할까 봐 아들을 때려죽이고 조금만 의심이 가도 신하를 잡아 족치고 죽였다. 왜 이렇게 궁예는 포악해졌을까? 미륵불을 팔아 백성의 귀를 홀리게 할 수는 있었지만 자신이 미륵불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거짓으로 잡은 임금의 자리는 내놓을 수도 없고 빼앗길 수도 없다는 강박감이 궁예라는 한 인간을 광포한 미친개로 만들었을 것이다.

미친개는 맞아 죽게 마련이다. 궁예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폭군은 항상 신하의 손에 의해서 죽게 마련이다. 왕건을 앞세워 궁예를 배척하자 궁예는 더러운 목숨을 보전하려고 변장을 하고 야반도주를 해서 평양에 가 숨었지만 뒤쫓는 왕건의 병졸에 붙들려 목을 잘리고 말았다. 궁예는 왜 이렇게 목을 잘려야 했을까? 임금의 자리를 못 지킬까 봐 포악한 짓을 서슴없이 저질렀던 죄 값을 뒤집어쓴 때문이다.

폭군이나 포악한 독재자는 이렇게 남의 손에 죽임을 당하게 마련이다. 그 손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측근에 잇는 법이다. 그래서 폭군이나 독재자는 등잔 밑이 어두운 줄을 모르고 행패의 불꽃으로 세상을 태우다 등잔 밑 둥이 부러져 꺼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다스림이란 불꽃으로 세상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밝게 비춰 온 세상을 환하게 하는 임금이나 대통령이 있다면 그들이 곧 성군(聖君)이다.

그리고 그러한 치자(治者)는 항상 물려줄 사람을 찾아 후임자를 위하여 자신의 자리를 비워 줄 채비를 해놓는다. 천하를 개인의 것으로 생각하면 독재자요 천하를 백성의 것으로 생각하면 바로 성군(聖君)이다. 임금의 시대에만 성군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첨단과학의 시대에도 성군이 있을 수 있음이다.

소인 같은 임금이나 독재자는 누구인가? 천하를 제 것으로 착각하는 자이며 저 아니면 안 된다는 고집에 열병이 든 자이다. 궁예는 임금의 자리를 붙들고 늘어지려고 갖은 행패를 부리다 참수를 당해 역사의 웃음거리가 되고 만 것이다.

 

충청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