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용 언론인(대전일보 전 대표이사·발행인)

 

[신수용의 쓴소리 칼럼] 신수용 언론인(대전일보 전 대표이사·발행인)

유비와 관우,그리고 조조가 다죽은 뒤다. 촉나라는 제갈량이 맡았다. 위나라는 조조의 아들이 뒤를 이었다. 두 나라는 으르렁대면서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먼저 나선 것이 제갈량이다.

제갈량은 천세(天勢), 지세(地勢)와 군력(軍力),군량(軍糧),전술전략, 주변국가의 동태를 다살 피고 위나라를 공격했다.

 제갈량의 공격을 받은 조예는 명장 사마의(司馬懿)를 보내 방어토록 했다. 제갈량은 사마의의 명성과 능력을 익히 알고 있던 터다. 제갈량은 그렇다면 누구를 보내 사마의의 계략을 방비할 것인지가 숙제였다.

제갈량은 생각 끝에 의(義)로 맺은 수양아들 마속(馬謖)을 택했다. 마속은 제갈량의 친구이자 1등 참모인 마량의 동생이기도 하다.

마속도 자신이 나아가 사마의의 군사를 방어하겠다고 청한다. 마속 또한 뛰어난 장수다. 하지만 사마의에 비해 부족하다고 여긴 제갈량은 주저한다.

그러자 마속은 실패하면 목숨을 내놓겠다며 거듭 청한다. 결국 제갈량은 신중하게 처신할 것을 권유하며 마속을 택해, 전략을 내린다. 전장에 나간 마속은 교만해졌다. 때문에 제갈량의 군의 진지 배치 명령(군법)을 어기고 자신의 계획대로 진지를 배치했다가 대패했다. 제갈량은 눈물을 머금으며 마속의 목을 벨 수밖에 없었다. 엄격한 군율이 살아 있음을 전군에 알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군율은 공(公)이요, 수양아들은 사(私)였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고사성어가 여기서 생겼다.

YS(김영삼)때 김현철씨를 구속시켰던, 당시 검찰수사책임자는 심재륜 전 대구고검장이다. 심 전고검장은 김 씨의 깊은 신앙심과 정의로움, 인간미를 잘 아는 터였다. 하지만 형법을 어겼으니 ‘만인 앞에 평등한 법’과 ‘사정(司正)을 통한 거악(巨惡)일소’를 외친 YS를 설득하는 일이 난제였다.

또 김 씨는 공인도 아니고, 어떤 대가도 없이 사인간의 금품거래인데 어떤 죄를 적용할지도 고민이었다. 결국 김 씨를 조세법처벌법위반혐의로 공소장을 썼다.

그 후 심 전 고검장은 YS에게 읍참마속(泣斬馬謖)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아끼시는 아드님은 사적인 관계요, 법률은 공적인 것이다. 읍참마속을 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설득해 김 씨를 구속시켰다.

지난 주 검찰이 지난 2018년 6.13지방 선거 때 청와대가 울산시장선거 개입의혹관련자 13명을 무더기로 기소했다. 당사자인 송철호 울산시장, 송병기 울산시경제부시장, 황운하전 울산지방경찰청장,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등이 그들이다.

이중에 유심히 본 것은 청와대 박형철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을 검찰이 처벌할 것인지였다. 박전비서관은 기자라면 다 아는‘윤석열검찰총장 사단’의 대표적인 검사였다.

사석에서는 ‘석열이 형’이라고 부를 만큼 고락을 같이했다. 윤 총장은 박 전비서관을 공직선거법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을 적용해 지난 29일에 두 차례나 재판에 넘겨 처벌을 요청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기가 막힌 사이다. 윤 총장은 박 전 비서관과 각별한 개인적 인연이 깊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가에서는 ‘친형제 이상 깊다’고 했다.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사건 특별수사팀에서 팀장과 부팀장으로 일했다. 당시 국정원 직원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 여부를 놓고 윗선과 마찰을 빚어 각각 정직 1개월과 감봉 1개월의 징계도 함께 받았다. 그해 인사에서도 윤 총장은 여주지청장에서 대구고검으로, 박 전 비서관은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부장에서 대전고검으로 좌천됐다.

박 전 비서관은 결국 2016년 사임한 뒤, 현 정부 출범 후 민정수석실 반부패비서관으로, 윤 총장 또한 2017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각각 복귀했다.

이런 관계인데도 박 전 비서관이 감찰무마 사건과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에 연루되어 검찰 조사도 누구 못지않게 강도 높게 받았다.

아마도 윤 총장은 박 전 비서관이 국민이 지켜보는 두 가지 의혹 사건 연루된데 남모르게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면서 실망과 함께 강도 높은 수사를 주문했을지 모른다.

수사가 대략 마무리된 엊그제, 이들의 신병처리를 놓고 검찰 지휘부와 수사팀이 머리를 맞댔을 때도 윤 총장은 ‘예외 없이 재판에 넘겨야한다’고 찬성입장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내부와 국민들 사이에서는 윤석열다운 ‘선공후사(先公後私)’다, 검찰이 달라진 ‘윤석열표 읍참마속’이라는 좋은 평가가 우세하다.

지난 2016년 겨울 한복판에서 울려 퍼진 촛불민심, 촛불혁명은 바로 그것이었다. 문재인정부의 탄생의 기저가 거기에 있음이다. 특혜, 반칙, 몰상식, 불평등, 불공정 등이 더 이상 발붙이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던 정부다.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법조.국방. 외교...모두 그걸 기대했다.

하지만 지금대로라면 우리가 기대했던 만큼 문 대통령이 후한 점수는 얻지 못할 것 같다. 해를 넘겨 2년 째인 조국일가에서 드러난 의혹덩어리와,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끼리끼리 문화’문화다.

읍참마속이 필요한 사람이 있었고, 그런 때가 있었지만 다 눈감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 일가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내칠 때 내치지 않아 일이 터진 뒤 뒤늦게 후회하는 것을 기억하는 국민은 그대목이 씁쓸하다.

,뿐만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캠코더 인사, 낙하산 인사에서도 분명히 피아(彼我)가 갈려있다. 국민들은 정치권에 속아 해방 후 지금까지 피아로 나뉜 삶을 살아왔다. 위정자들이 ‘생각이 다르면 모두 적’으로 몰아 붙였다. 해방 후 일어난 온갖 제주4.3항쟁, 여순사건, 6.25 동존상잔, 4.19 의거, 5.16군사쿠데타,5.18광주항쟁은 아픈 역사는 오직 끼리끼리였기에 피해자는 한(恨)이 된 것이다.

치유되지 못한 권력들, 망치만 쥐어주면 튀어나온 못(針)은 없는지 구실을 찾아 휘두르는 권력 때문이었다. 그때 제대로 된 지도자라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편을 포용하고, 수족의 잘못은 읍참마속 하는 선례를 남겼다면 나라는 이처럼 엉망진창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아마추어 복서는 상대를 때려눕히고, 별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프로복서는 상대를 눕힌 뒤 ‘처음 상대한 대단한 복서’라고 띄운다.

문재인 정부에서 배워야할 점은 그래서 제갈량의 읍참마속처럼, 심재륜의 선공후사의 정신처럼, 윤석열이 호형호제하던 박형철을 기소한 것을 배워야한다. 정치도, 경제도, 국방도, 외교도 잘못한 참모를 다른 곳에 돌려 막을게 아니다.

문대통령도 모르는 청와대 내 의혹의 보따리가 있다면 감쌀게 아니라 의혹을 샅샅이 공개하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읍참마속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후 금품의혹에 휩싸인 최측근 안희정을 감옥에 보내며, 읍참마속의 심정이라며 안타까워했던 것이 다 이 때문이다.

읍참마속은 원칙이고 약속이고, 때로는 법이다. 그래서 반드시 성공해야할 이 나라를 위해서 사회 공정을 위해서도 문대통령은 읍참마속의 심정에서 국정을 살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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