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충청논단]  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에디슨은 1983년 미국 의회가 그의 생일을 ‘발명가의 날’로 지정했고, ‘라이프’지는 지난 1000년간 가장 중요한 인물 1위로 선정할 만큼 잘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인생이 잘 풀린 것은 아니다. 그 중 가장 아까운 것은 노벨상 수상의 기회를 두 번이나 놓친 것이다.

첫 번째 기회는 1912년에 있었는데, 그 때 공동 후보였던 테슬라가 에디슨과 같이 노벨상을 받지 않겠다고 거절하면서 기회를 잃었다. 테슬라는 에디슨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는데, 교류 전기를 발명하여 에디슨에게 직류전기 대신 더 실용적인 교류전기로 전환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이미 직류전기에 많은 투자를 했던 에디슨은 자신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전 세계에 훨씬 유용한 교류전기의 전환을 거절하였다. 화가 난 테슬라가 에디슨 회사를 나와 교류로 발명특허를 받고 대대적인 교류 송전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자 에디슨은 교류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고압 교류로 동물을 죽이는 공개 실험을 하고, 교류 전기의자로 사형집행을 추진하였다. 어려움에 부딪친 테슬라는 교류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 자신의 특허권도 포기하였다. 그 뿐 아니라 테슬라는 전류전환장치, 발전기용 조절기, 무선통신기술, 고주파기술 발전, 전자현미경, 형광등, 라디오, 무선조종보트, 자동차 속도계, X선 사진, 레이더 등 전기와 관련된 수많은 업적을 만들었지만, 에디슨의 질투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였다.

하지만 오늘날 테슬라의 업적을 기려서 국제순수 및 응용물리학 연맹(IUPAP)의 표준단위 및 그 정의에 관한 위원회는 자기장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를 테슬라로 정하였다. 또한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테슬라라는 이름의 유명한 전기자동차 회사도 만들어졌다.

에디슨에게는 또 한 번의 노벨상 수상 기회가 있었다. 전구의 밝기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에디슨 효과’ 때문이다. 에디슨은 전구 안쪽 유리벽에 검댕이가 안 생기도록 금속 필라멘트를 사용하였는데, 필라멘트 사이에 금속판을 넣고 백금으로 만든 선에 연결하면 그 사이의 진공관에 전류가 흐르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이것은 그 당시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충격적인 현상이었다. 하지만 에디슨은 그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규명은 하지 않은 채 곧바로 다른 발명에 매달렸다. 이후 영국의 물리학자 리처드슨이 에디슨 효과의 과학적 규명을 하여 192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에디슨은 공동 수상자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그 뿐 아니라 에디슨은 경제적으로도 성공하지 못하여 그의 회사는 전구의 특허권을 둘러싼 소송으로 많은 경제적인 손실을 보았다. 또한 그는 첫 부인이 죽었을 때에는 바쁘다고 장례식장도 가지 않았고, 자식들도 거의 돌보지 않아서 아버지와 가장 친밀하다고 자부한 셋째 아들도 아버지 얼굴을 평생 봤던 시간이 채 1주일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불운에 대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발명의 천재인 그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궁금해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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