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기고
나를 위해 적(敵)을 이용한다곽봉호 옥천군의회 의원
충청일보  |  webmaster@ccdaily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02.06  11:28:13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기고] 곽봉호 옥천군의회 의원

적을 씨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없애려는 생각은 짧아도 한참 짧은 생각이다. 적은 자기에게 해를 끼치거나 싸움을 걸어오는 존재이니 내 편이 될 수 없다. 또 글자가 근거지가 되는 나무뿌리, 밑동을 나타내는 적(啇)을 치는 복(攵)으로 되어 있으니 서로 으르렁대며 싸우는 상대인 원수가 된다.

‘적의 적은 아군’이란 말이 있다. 갑과 을이 대립 관계인데 병 또한 을과 원수진 사이라면 갑과 병은 공통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동맹하게 된다. 을을 제거하고 난 뒤의 일은 차후 문제이고 우선은 나 살고 보자는 식의 동지가 된다.

하지만 의외로 적에 대해 긍정적인 격언이 많다. ‘적이 없는 자는 친구도 있을 수 없다’, ‘자기 자신보다 질이 나쁜 적은 없다’ 등이다.

친구는 자기를 감싸주지만 적은 약점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현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적을 만나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생각된다. 큰 뜻을 품고 큰 것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일수록 그리고 진실에 다가서는 인생을 살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사악하고 큰 적이 앞에 나타날 것이다.중요한 것은 그 적을 적으로서 미워하는 것보다는 내게 가르침을 주는 스승으로 생각하고 나의 발전과 성공을 위해 그 적을 이용하는 것이 될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한(韓)나라 재상(宰相) 공숙(公叔)은 왕자 궤슬과 권력을 놓고 항상 대립했다. 이 권력다툼은 궤슬이 국외로 추방되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공숙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자객을 보내 궤슬을 암살하려 했다.

그러자 그의 측근이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태자 백영이 재상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궤슬이라는 존재 때문입니다. 태자는 궤슬을 견제해야 하는데 재상께서 그 견제역할을 해 오셨기 때문에 자리가 보존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궤슬이 없어져 보십시오. 그때는 재상께서 태자의 표적이 될 것입니다. 궤슬이 존재해야만 재상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공숙은 궤슬 암살 계획을 취소했다. 적은 어떤 적이든 좋을 것이 없다. 하지만 적의 역량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 또한 정치인의 능력이다. 상대의 작용을 여러모로 냉정히 따져보고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면 적과도 동거도 감수해야 한다. 아무리 의견을 달리하더라도 받아들일 부분이 있는 법이다. 경쟁을 하다 한쪽이 승리하게 되면 상대방의 싹부터 자르려고 덤비는데 어리석은 일이다.

꿋꿋이 반대하는 상대가 아무리 고약하더라도 일부러 기를 살리고 계책을 활용한다면 발전의 길이 탄탄하지 않겠는가. 작금 사생결단으로 싸우고 있는 여야의 정당들이 더욱 그렇다. 정적의 존재는 자신이 저지를지도 모를 실수를 미연에 방지해 주는 방패 역할을 할 수도 있으며, 강력한 적이 있음으로써 자기 진영의 단결을 다지는 촉매로도 작용할 수 있다.

역사상 유명한 정치가들 가운데 고의로 반대파를 남겨놓은 경우가 적지 않다. 대단히 의미심장한 일이다. 이야말로 상생의 정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요즈음 정치인들은 상생(相生)은 커녕 상살(相殺)의 정치로 일관하고 있다.

물론 나름대로 싸우는 이유가 충분히 있을 것이다. 상대의 잘못 때문이라고 책임을 돌리고 싶어 할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에게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당리당략적 파쟁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충청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