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2월 첫째 주

▲ 충청일보 1970년 2월 4일자 1면.

[충청일보 신홍균기자] 1970년 2월의 첫째 주에도 정치권 관계 개선에 대한 기사들이 주를 이뤘다. 지금 세대에는 낯설 '정부미'가 시중에 방출됐고 말단 공무원의 비리도 문제 거리였으며 북한이 강제 납북한 KAL기 승객 송환 문제도 뜨거운 이슈였다.


△1970년 2월 3일

'硬化(경화)한 政局(정국)에 突破口(돌파구) 週末(주말)께 協商(협상) 再開(재개)될 듯' 제하의 기사가 이날의 1면 머리다.

'與(여)·野(야) 고위소식통들은 2일 아침 양당의 새 원내총무의 취임 절차가 끝나는 이번 주말께부터 協商(협상)을 재개하여 곧 國會(국회)를 정상화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하고 與(여)·野(야)간의 國會(국회) 정상화 協商(협상)과 관련 없이 新任(신임) 柳珍山(유진산) 新民黨(신민당) 대표의 朴正熙(박정희) 大統領(대통령) 訪問面談(방문면담)이 2월 중에 이루어지도록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는 설명이다.

地方版(지방판)인 2면의 머리는 '乘客(승객) 換拂金(환불금) 삼켜 말썽'이다.

내용은 '당국에서는 공무원 부정을 막기 위해 단속반을 편성, 대대적인 색출에 나서고 있으나 말단에서는 이를 외면, 승객들의 환불금마져 들어먹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말썽이 되고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大田(대전)철도국관하 대전역개찰에서는 지난 22일 밤 1시경 서울발 부산행 제19열차가 예정시간보다 약 2시간이나 연착, 승객들에게 환불금을 지불하여야 함에도 이날밤 낙영조역과 金용화개찰반장, 韓학술직원 등 3명이 공모 1만6백원을 들어먹어 승객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고 돼 있다.

3면의 머리는 '農路新設(농로신설) 百60킬로' 제하의 기사다.

'충북도는 70년도농로확장계획으로 총공비 2억3천8백만원을 들여 1백66「킬로」를 신설하는 한편 기존 4백77「킬로」의 농로를 노폭 5「미터」 이상으로 확장할 계획을 수립 1월부터 5월·11일부터 12월까지 농한기를 이용 시공토록 했다'는 내용이다.


△1970년 2월 4일

1면 머리는 '新民(신민) 要職人選(요직인선) 完了(완료)' 제하의 기사다.

'新民黨(신민당) 柳珍山(유진산) 대표는 3일 상오 事務總長(사무총장)에 高興門(고흥문), 院內總務에 鄭海永(정해영), 政策(정책)심의회의장에 朴(박)병배, 中央政治(중앙정치) 훈련원장에 金(김)원만, 中央黨紀(중앙당기)위원장에 金(김)형일씨를 각각 委囑(위촉), 黨要職(당요직) 人選(인선)을 마쳤다'며 당 간부들의 면면을 알렸다.

이날 1면에서는 '政府米(정부미) 3日(일)부터 放出(방출)' 제하의 기사가 눈에 띈다.

내용은 '農林部(농림부)는 쌀값이 5천5백원을 넘고 있는 수원 마산 밀양 등 10개 중소도시에 대해 보유미를 3日(일)부터 방출하기로 했다'이다.


△1970년 2월 5일

북한 관련인 '安保體制强化策討議' 제하의 기사가 이날의 1면을 장식하고 있다.

'政府(정부)는 4日(일) 上午(상오) 10時(시) 中央廳(중앙청)에서 安保會議(안보회의)를 열고 격화되고 있는 북괴도발에 대처하는 國家安保體制(국가안보체제)의 强化策(강화책)을 討議(토의)했다'는 내용인데 그 옆에는 'KAL機拉北者(기납북자) 곧 送還(송환)' 제하의 기사가 자리하고 있다.

'북괴는 지난 12월11일 납북된 대한항공(KAL) 소속 YS11여객기의 승객들 중 돌아가길 원하는 승객들은 곧 일방적으로 송환할 것이라고 북괴의 평양放送(방송)이 3일 보도했다'는 설명이다.
 

△1970년 2월 6일

5일에 이어 이날도 KAL기 사건과 관련한 '北傀(북괴)의 細菌戰劃策(세균전획책) 규탄·칼機送還(기송환) 市民(시민)궐기大會(대회)' 제하의 기사가 머리에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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