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4장 소슬바람으로 바느질을 하며

▲ <삽화=류상영>

보은댁의 목소리는 비장한 각오를 한 표정에 걸맞게 진지했다. 하지만 옥천댁이 듣기에는 진지한가 보면 어딘지 모르게 서글프게 들리기도 했다.

"어머님, 지 나이가 올게 스물일곱 살이여유. 해방 전 나이로 치자믄 아를 낳기에 늙은 나인지는 모르겄지만, 요새는 지 나이에 결혼을 하는 여자들도 있슈. 집안 살림이 빈궁한 것도 아닝께 안직 실망을 하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이 드느만유."

옥천댁은 보은댁이 손자를 기다리는 심정을 충분히 이해를 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기회가 있다는 생각에 조용한 목소리로 반대를 했다.

"니 말이 틀린 말은 아녀. 암, 내가 젊었을 때도 스물일곱이 아니라 마흔 살 때 아를 낳는 여자들을 많이 봤응께. 그러나 문제는 그기 아녀. 우신은 니가 담에는 틀림읎이 아들을 낳는다는 보장을 할 수가 읎잖여. 니 시아버님도 하시는 말씀이, 며느리가 담에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약을 구할 수만 있다믄 땅 열 마지기가 아니라 및 십 마지기를 내 놔도 안 아깝다는 거여. 내가 시방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겄냐?"

보은댁은 말을 끊고 나서 옥천댁의 눈치를 살핀다. 옥천댁은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 체 가만히 앉아 있다.

"사춘이 땅을 사믄 배가 아프다고, 원래 사람들은 갑자기 불티처럼 번성해 가는 집안은 고은 시선으로 보지 않는 벱여. 니가 알다 싶이 우리 집안이 이만큼 번성하게 된 지는 인제 제우 십이 년째여. 남들은 몇 대를 이뤄도 모으지 못할 재산을 눈 깜짝할 새에 모았응께 시샘을 하는 사람들이 을매나 많겄냐. 시샘하다 못해 승질 급한 작자들은 배가 아파서 저승 간 사람들도 한 둘은 아닐끼다. 그라고 아무리 번성해 가는 집안이라도 저 집 은젠가 망할 집여, 저 집 대가 끊기믄 한 해 및 백 석을 한들 머가 소용있겄어. 니 시할아부지가 일본 사람 밑에서 마름 질 하며 억척같이 재산을 모았응께 대를 이어 갈 자식이 읎는 거는 당연할껴. 라고 손까락질 하기 시작하믄, 그 때 부터는 이미 망할 망자가 뵈기 시작하는 벱이다 이 말이여. 그래서 하는 말인데 동리사람들이나 믄소재지 사람들 입에서 망할 망자가 나오기 전에 대를 이어갈 아들을 읃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집안을 시샘하는 사람들의 입에 똥물을 끼얹을 수 있지. 그릏다고 내가 동하의 소실을 들이자는 말도 아녀. 나도 체민이라는 것이 있지. 니가 우리 집안에 들어와서 이만큼 살게 되었는데 설마한들 니 가슴에 대못을 박고 동하한테 소실을 읃어 주겄냐?"

"그러시다믄 워디서 양자를 구해 오자 이 말씀이셔유?"

"양자를 구할라믄 집안 일가들이 많아야 하는데 니가 알다싶이 우린 곡양 이씨 십삼 대 손이라는 것 벢에 몰라. 비록 족보가 읎지만 돌아가신 시조부가 술만 드시믄 우리도 뼈대가 있는 자손잉께 살림이 피믄 족보를 맨들어야 한다고 노래를 부르셨응께 맞는 말씀이시겄지. 그래서 우리도 은젠가 곡 양 이씨들하고 연이 닿으믄 있는 집안들츠름 번지르한 족보를 맨들라고 맘을 먹고 있다."

"양자를 읃을 수도 읎다믄 무슨 수로……"

"내 말을 잘 들어 봐라. 옛날에는 양반집에서 대를 잇지 못할 아들을 읃지 못하믄 씨받이라는 걸 읃었다고 하드라. 내 생각에는 그 방법에 젤로 좋을 거 가텨. 우신 씨가 지 씨잉께 동하가 좋아 할 것이 아니냐……"

보은댁은 말을 하다 말고 옥천댁의 눈치를 살핀다. 예상외로 담담한 얼굴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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