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수요단상] 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최근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해서 참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사실 오늘날 사회에서 우리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이런 특정한 사건들만이 아니다. 얼마 후 코로나19가 완전히 퇴치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면 그 이후 우리는 불안과 염려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 있을까?

이번 코로나19는 아주 극적인 상황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걱정과 근심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보면 크기나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는 매 순간 이와 같은 걱정과 염려에 시달리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할 때면, 왠지 오늘은 차가 막히지 않을까? 갑자기 차가 고장이 나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어린 자녀를 학교에 보낸 후에도 내 아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은 하고 있는지, 행여나 다른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학업이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늘 걱정하고 염려한다.

이와 같은 염려는 일종의 두려움이다. 미래에 일어날 안 좋은 일들을 생각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나 사고를 머릿속으로 미리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염려는 사실 두려움 그 자체와 똑같지 않다. 어두운 숲길을 걸을 때, 곰이나 호랑이 같은 맹수를 만나게 되면 우리는 두려움을 느낀다. 다리는 떨리고 온 몸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게 된다. 하지만 염려는 다르다. 염려는 아직 맹수를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몇 미터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숲길을 헤매다 보면 언제 이러한 맹수를 만나게 될지 염려하게 된다. 행여나 길을 완전히 일어서 이 숲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 염려가 되기도 한다.

지금 당장은 문제가 찾아오지 않았지만 내 몸과 마음은 이미 그 문제를 만난 것처럼 반응한다. 다리가 떨리고 온 몸에 땀이 난다. 얼굴은 경직되고 아무런 문제도 없는 숲길을 아주 위험한 길인 것처럼 신경을 곤두세우고 걷게 된다.

이처럼 염려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훗날 다가올 위험을 미리 대비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더 많은 경우 우리는 이 염려의 마음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잃고 있다. 건강을 잃고 시간을 잃고 물질을 잃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염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성경은 염려하는 마음과 기뻐하는 마음을 함께 연결하여 이야기하는 구절이 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4-6)

늘 기뻐하되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무슨 의미인가? 일상생활에서 염려해야할 일을 생각하기보다 기뻐해야할 일을 더 많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염려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염려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일이라도 기뻐하기로 작정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내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하다면 그만큼 내 마음은 염려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염려는 일종의 감정과 같다. 따라서 우리는 염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삶을 염려로 채우는 것도 결코 현명한 방법은 아닌 것이다. 확실히 다가올 문제를 미리 염려하며 준비하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우리와 전혀 관련 없는 일들까지 일일이 신경 쓰며 염려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 인생을 망치는 길이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염려할 일들에 집중하는 것보다 기뻐할 일에 더욱 집중하는 습관을 가지라.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 일의 의미를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그 안에서 내가 기뻐할 수 있는 이유를 발견하라. 그와 같이 매 순간의 삶 속에서 기뻐할 이유를 발견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염려에 사용할 시간과 노력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이를 통해 여러분의 삶을 염려의 시간이 아닌 기쁨의 시간으로 더 많이 채우도록 노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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