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련 사회복지사

[백목련] 정혜련 사회복지사

2020년 2월 9일 LA에서 개최된 92회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한국영화 ‘기생충’이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 작품상 4관왕의 영광을 얻었다. 시상식은 한국시간으로 2월 10일 오전에 방송되었다. 각본상에 기생충이 불렸을 때는 너무 놀랐고, 국제장편영화상 수상 후에는 2관왕이라는 것을 깨닫고 벅차올랐다.

감독상이 결정되었을 때는 믿겨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작품상을 수상했을 때는 오후 내내 들뜬 마음으로 퇴근 이후 영화를 사랑하는 친구들과 이 기쁨을 나눌 생각에 행복했다. 방송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당시 실시간 쏟아지는 매체들의 속보는 나를 더 긴장시켰다. 분명 각본상까지는 확인이 되었는데, 외국어장편영화상을 받았다고 하고, 어떤 곳은 감독상까지 받았다고 했다. 나중에는 작품상을 탔다고 하니 믿기지가 않아 아카데미 공식사이트를 계속 확인했다.

어린 시절 내내 주말의 명화를 보며 자랐고 -봉준호 감독도 이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시기이자 터닝 포인트였던 90년대에 20대를 보낸 나에게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선물했다.

외화가 대세였던 80년대 이후 봉준호, 김지운, 박찬욱 등의 감독과 지금은 제작자로 유명한 강우석, 강제규 감독은 90년대에 출발점을 둔다. 그리고 1976년 작품인 ‘겨울여자’의 59만 명의 흥행기록이 14년만인 1990년에 ‘장군의 아들’ 68만 명으로 깨졌다. 그 이후 1993년 서편제가 한국영화 최초 100만 명을 돌파했고 1997년 PC통신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며 신파조가 아닌 세련된 멜로영화였던 ‘접속’이 67만 명을 동원했다.1999년에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쉬리’가 서울 관객 200만 명을 돌파하며 최종스코어 전국 620만 명의 신화를 썼다. 마침내 2000년대로 접어들며 전국관객 천만 돌파의 영화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또래의 감독들이 우리의 고민과 생각을 새로운 방법으로 제시할 때 그들과 함께 우리도 미국의 알프래드 히치콕, 프랑스의 고다르, 제임스 카메룬 영화를 관람하며, 옆구리에 씨네21을 끼고 한국영화를 밤새워 토론했다. 뭔가 얘깃거리가 생기고 당시 최고의 영화시장들과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마음 한 켠에는 늘 아쉬움이 있었다. 한국영화는 우리의 정서와 감정을 담아내기에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더 큰 도약을 위해 한 번은 거쳐야 할 것처럼 세계무대에서 동등하게 소통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엘리트 예술 영화의 한 축인 칸느와 영화강대국이자 대중성의 바로미터인 아카데미에서 동시에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품격을 더한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은 최고의 어떤 상보다 감동적이었다. 미국의 우월성과 백인 중산층 가치를 중요시 했던 아카데미에서 미국의 민낯을 영화로 만들어 왔던 감독 마틴 스콜쎄지에 대한 봉감독의 존경의 표현에 모든 영화인들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우리는 영화라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그의 말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당분간은 이 기쁨을 누리고 싶다. 한국영화를 사랑했던, 축복받은 90년대 시네마세대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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