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천 입시학원장

 

[목요사색] 정우천 입시학원장

선거의 계절이 왔다.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야 보안이란 말이 민망할 정도로 여기저기 다 털렸음이 틀림없다. 이를 증명하듯 이 당 저 당, 성향 불문의 국회의원 예비후보자들에게 다채로운 문자가 온다. 공천과 관련한 여론조사에 자기를 지지한다고 응답해달라는 내용의 문자도 상당수 있다. 그들 중에는 공직을 맡아서는 곤란하겠다고 마음속으로 정해놓은 후보자들의 문자도 꽤 섞여 있다. 아마도 내가 적극적으로 응답한다면 그는 불리하겠지만 그 내막을 모르기에 그런 문자는 계속 온다. 어떤 면으로는 응답자의 성향을 모르는 채 적극적으로 응답해달라고 보내는 문자야말로 의도의 순수성이 더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인이 보여주는 기대치 않은 정의로움은 아마도 무지의 장막 그 너머에 있기에 가능할 것이다.

1980년 뮌헨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오디션에 아비 코난트라는 트롬본 연주자가 지원했다. 심사위원들은 연주에 열광했고 아비 코난트는 합격했다. 당시 트롬본은 남자가 연주해야 하는 악기라고 대부분 믿던 시대였다. 당연히 뛰어난 연주실력을 보인 그를 남자일 거로 생각했지만, 무대의 블라인드가 걷히자 연주자가 여자임이 밝혀지고 심사위원들은 깜짝 놀랐다. 그동안 다른 오디션에서 여러 번 떨어졌던 아비 코난트는 어떻게 합격했을까. 그것은 바로 평가의 공정성을 위해 연주자를 가린 채 심사하는 블라인드 오디션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하나의 케이크를 공정하게 나누는 방법이 있다. 어떤 한 사람이 케이크를 자르고 남은 사람이 먼저 케이크를 선택하게 한 후, 그는 나중에 남은 조각을 갖는 것이다. 이러면 그는 케이크를 똑같이 자를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나중에 자신에게도 최대의 몫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누가 먼저 선택하게 될지 모르는 무지의 장막만이 공정한 케이크 나누기를 보장할 수 있다. 정의론이란 명저를 남긴 존 롤스는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이란 개념으로 공정성과 정의에 대한 이론을 펼치며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공정성의 핵심은 운의 중립화이다.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부자인지 가난한지 등 우연히 나타날 수 있는 사회적·자연적 조건을 없애야 한다. 그래야만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케이크를 나눈 사람이 가장 나중에 나누어진 케이크 조각을 선택하게 하는 방식이 가장 공정하다면, 케이크를 나눈 자가 가장 먼저 그중의 한 조각을 선택하는 것처럼 불공정한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자기가 케이크를 나누어 놓고 자신이 선택권을 독점하는 일들이 왕왕 일어난다. 정치인들이야말로 대표적으로 그런 조직이 아닐까? 자신이 만든 법으로 자신이 수혜를 보는 조직이니 그렇다.


'도둑질 할 기회가 없었던 도둑놈은 신사인 척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제까지 정치인들이 주장하고 공약했던 일이 다 이루어졌다면 이 땅은 진작에 유토피아가 됐을 것이다. 누군가가 진정으로 존중받을 만한 사람인지는 그에게 기회가 오거나 힘을 가졌을 때도 초심을 잃지 않고 변함없는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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