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연합군의 일원으로 프랑스에 주둔하던 미군 막사에서 병사들이 하나 둘 독감에 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전장에서 걸릴 수 있는 여느 질병처럼 여겼지만 곧 확산력·살상력이 어떤 무기보다 강하다는 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독감은 유럽과 미국은 물론 사실상 전 세계를 아우르며 퍼졌다.

일제 치하였던 한반도에서도 14만명이 숨졌다고 알려져 있고 당시 전 세계 사망자는 단 2년 동안 최대 5000만명에 이른 것으로 추산된다.

의학계는 이런 상황을 특정 질병이 마치 폭풍이 몰아치듯 확산한다고 해서 '아웃브레이크(Outbreak·감염병 대유행)'라고 부른다.

이 '스페인 독감'은 당시의 병원에선 난생 처음 보는 질병이었다.

게다가 이 독감이 유행했던 20세기 초반의 기초의학과 치료 기술도 지금보다 훨씬 뒤떨어졌기 떄문에 환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물론 지금의 의료 수준은 비할 바 없이 향상됐지만 끊임 없이 성질을 바꾸는 특성 상 바이러스로 인한 모든 질병을 예측함은 불가능하다.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도 설마 했던 '슈퍼 전파자'까지 나타나며 코로나19 사태가 새로운 양상을 띄게 됐다.

정부는 확진자 15명이 무더기로 발생해 국내 환자가 총 46명으로 늘었다고 19일 발표했다.

지난달 20일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근 한 달 동안 평균 한 명 꼴이던 일일 확진자 숫자가 돌연 두 자릿수로 급증했다.

숫자의 증가도 그렇지만 그 내용은 더욱 충격적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대구·경북의 신규 확진자 13명 중 11명은 31번째 환자의 동선과 겹치며 다른 두 명도 이 환자와의 연관성이 의심되고 있다.

국내 첫 '슈퍼 전파자'가 등장한 셈이다.

서울 성동구의 신규 확진자는 29·30·31번째 환자와 마찬가지로 해외 여행력이나 확진자 접촉 같은 역학적 연결고리가 없는 불특정 감염에 해당한다.

이같은 전염병 확산 양태의 극적 변화는 우리나라가 이미 지역사회 확산의 초기 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체제를 흔들 정도의 대혼란에 빠진 중국이나 초기 방역 실패로 쑥대밭이 된 일본 외에 최근 며칠 새 홍콩, 마카오, 대만, 싱가포르 등 인근 국가에서도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됐다.

상황 급변에 따라 우리 정부의 방역 대책도 근본적인 수정을 할 필요가 생겼다.

감염원과 감염 경로가 드러나지 않는 확진자 속출은 본인도, 방역 당국도 감염 사실을 모른 채 일상 생활을 하는 환자가 곳곳에서 부지불식 간에 바이러스를 옮기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런 현상이 지속하면 대유행은 시간 문제다.

코로나19가 전파력은 강하지만 그리 치명적이지는 않다고 확인된 만큼 지나치게 두려워 할 필요는 없지만 최악의 상황에 대비, 방역 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하지 않을까.

환자의 국내 유입을 차단하는 '봉쇄 전략'은 지금까지 유효했고 일정 성과도 거뒀다.

이제는 지역사회 감염을 최대한 늦춰 피해를 최소화하는 '지연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

부디 코로나19로 인한 '아웃브레이크'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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