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손교육의 체험을 표현한 책

양아록(養兒錄)은 현존 최고(最古)의 육아일기로, 자손교육의 체험을 사실적(寫實的)으로 표현한 아동교육사와 풍속사회사의 귀중한 연구자료다. 필자가 1989년 필자의 고향 아랫마을인 충북 괴산군 문광면 유평리 '양아록'의 저자 이문건의 후손집에서 발견했으며, 1996년 한국한문학연구 19집에 '이문건의 양아록'이라는 논문으로 소개해 학계에 상당한 충격을 안겨준 화제의 책이다. 금년은 '양아록'발견 20주년이 된다.

지난 1997년 2월 kbs 1tv '역사추리'시간에 '조선시대 육아리포트'란 제목으로 극화방영됐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가치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양아록은 이문건(1494-1567)이 손자 이수봉(1551~1594)을 1551년 출생한부터 16세까지의 교육과정에서 경험한 내용들을 연대순으로 담아놓았다. 손자의 신체적 성장발달과정에서 단계적으로 나타나는 특징과 특정질병의 증상, 질병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손자의 모습을 상세하게 표현해 놓았다.

그리고 손자를 훌륭한 인물 '사대부형(士大夫形) 인물 즉 학문과 인품을 겸비한 전인적(全人的)인물로 양성하기 위해 손자를 교육하면서 겪었던 심리적 고충을 진솔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놓고 있다.

지금도 자녀에 대한 최대의 관심사는 교육이다. 그러나 요즘은 인격수양은 소홀히하고 학력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 그 결과 과거보다 패륜적 행위와 비인격적 행태가 빈출한다. 인품과 학문을 겸비한 '군자적(君子的) 식견인(識見人)'은 통시적으로 요구되는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이런 점에서 '양아록'에 나타난 이문건의 교육관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문건이 손자 양육에 각별한 관심을 갖은 데는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 그는 을사사화에 연좌돼 경상북도 성주 옥산리에서 귀양살이했다. 58세의 만년에 손자 이수봉을 얻었다. 그는 자신뿐 아니라 두 형과 조카들이 모두 당쟁의 화를 입은데다가 64세되던 1557년에 반편이 된 외아들 온(1518~1557)마저 죽었다.

이렇게 되자 이문건은 고려말부터 명문으로 명성을 떨친 가문이 쇠퇴할 것 같은 위기감을 절감한 것이다. 그리하여 손자가 사대부의 가통을 계승·부흥해 사회의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하나뿐인 손자의 양육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이런 의식이 '양아록'에 절절히 담겨져있다.

유학의 기본적인 이념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이다. 이렇듯 유학에서는 개인의 완성을 통한 사회적 역할· 봉사를'중시했다. 따라서 이런 정신을 지닌 사람들이 인류 문화문명을 발전시켜왔다. 이문건은 물론 조선 사대부들은 이런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정신이 담겨있는 '양아록'은 자녀를 낳지 않고 개인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심화돼가는 이 시대에 개인과 가문의 사회적 역할의 중요성을 재삼 깨우쳐준다.

▲ 이상주 극동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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