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월요일 아침에] 김영애 수필가

첫눈 한번 제대로 내려주지 않아서 미련이 남아 있던 겨울이었는데 이틀에 걸쳐서 눈이 펑펑 내렸다. 베란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우암산의 설경이 근사하다. 며칠이 지나도 잔설이 남아 있는 우암산은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냈다. 펄펄 날리는 눈 꽃송이들을 창가에 앉아서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반가운 이를 만난 듯이 찻잔을 사이에 두고 내리는 눈과 마주하고 오래 앉아 있었다. 하얗게 내리는 눈은 금세 온 세상을 설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때 묻고 더렵혀진 세상 구석구석에 순백의 세례를 내려주고 있었다.

겨울답지 않은 지난 겨울은 흉흉하기만 했다. 그래서인지 더 길게 느껴지고 지루했다. 약도 없는 무서운 바이러스가 기승을 해서 몸도 마음도 움츠린 채 보낸다. 마스크로 얼굴에 반을 가리고 눈만 내놓은 채 사람들을 만나는 세상은 답답하기만 했다. 뉴스는 날마다 세계적인 바이러스 재앙을 생중계하듯이 다루었다. 그럴수록 민심은 더욱 심란해져서 경기침체는 겨울 동장군보다도 혹한기를 만들었다. 여행계획도 취소를 하고 정기적인 친목모임도 기약 없이 미루었다. 가벼운 몸살기가 있어도 겁이 덜컥 났다. 정녕 봄이 오는데 마음의 빗장은 풀리지가 않는다.

깊숙이 칩거하고 지내면서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과 겨울 동안의 안부를 주고받는다. 저만치서 봄이 오고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을 전하며 지낸다. 자박자박 걷는 산책길에 봄 냄새가 코끝으로 전해져온다.

살을 발라낸 생선가시처럼 앙상하던 나무들도 기지개를 켜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양지바른 곳에 진달래는 꽃망울이 토실해지고 있다. 혹한의 겨울이 지나면 의례히 봄이 오듯이 살아가는 일도 자연의 섭리처럼 마땅히 봄날이 찾아오는 이치이면 좋겠다. 아직은 한기가 느껴지지만 산책을 나서기를 잘했다. 봄을 일찍 만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깊은 겨울이 봄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은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이다. 24절기 중에 입춘 다음으로 두 번째 절기인 우수에는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는 절기라고 한다. 강물에 얼음장이 녹아서 유유히 흐르듯이 마음속 자잘한 미움들에 대해서도 용서를 하고 싶어진다. 살아가면서 알게도 모르게도 내 마음속에 미움에 강이 깊이 흐르고 있었는지 모른다.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도 때로는 살얼음이 되고 얼음장 같은 감정의 날을 세우고 살기도 했다. 봄이 되면 그 미움들마저도 그리움이 된다. 대지의 봄기운이 강하게 요동치듯이 그리움이 꿈틀거린다. 그 자잘했던 미움들에게 제일 먼저 꽃소식을 전해야겠다.

눈도 겨울답게 내려주었으니 이제 미련 없이 겨울을 보내 줄 수 있게 되었다. 우암산에 잔설이 녹으면 봄이 성큼 다가올 올 것이다. 덕석같이 두꺼운 외투도 벗고 마음에 환기를 시키면서 켜켜이 묵은 걱정의 먼지들을 털어버려야겠다. 봄은 준비된 사람에게 먼저 다가와서 찬란하게 꽃을 피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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