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인 전 농관원 충북지원 품질관리과장

[내일을 열며] 박봉인 전 농관원 충북지원 품질관리과장

사람은 "자연(自然)에서 나고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흔히 들으며 많이 접한 '자연인(自然人)', '자연주의(自然主義)' 등의 단어가 아닌가 싶다. '자연'을 사전에 찾아보면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란 설명이다.

요즈음 TV 방영중인 산속에서 홀로 사는 사람의 스토리가 전개되는 프로그램을 보면 혼자서 자유스럽게 아무런 제약 없이 어느 누구의 간섭도 없이 살고 싶은 사람들의 본성이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의 마음속에 자연을 동경하며 아무 눈치 보지 않고 제약 없이 만인이 마음 편하게 살아 갈 수 있는  사회라면 그 얼마나 아름답고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나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세상이 지구상에 있을까? 

대동강이 풀린다는 우수가 지나간 즈음 땅 밑에는 씨앗에서 이미 촉이 움직이듯 어둠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내 인생을 살기위해 자연에 순응하며 새로운 출발 도약을 위해 준비하는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지며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소원을 빌고, 서쪽의 기우는 해질녘 노을 앞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석양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동의 순간을 맞이하며 고요와 평화를 갈망하며, 감성(感性)이 여리고 투명하던 시절에는 길섶에 피어나는 풀꽃 하나에도 발걸음을 멈추고 눈길을 주며 그 아름다움과 생명의 신비에 감동을 받곤 했었다. 이렇게 우리들은 지금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 무감각한 생물로 꾸며져 가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 

새롭게 발견되는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삶은 놀라울 만큼 깊고 넓은 그 무엇이다. 하나의 위대한 신비이고 우리들의  생명이 그 안에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나라다. 먹고 살기 위해 돈벌이에만 치중하고, 승진만을 위해 혼신을 다한다면 삶 그 자체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인도의 세계적인 스승 '지두 크리슈나무르티'가 설파했다고 한다.

경제만을 최고 가치로 여기며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가장 은밀한 속성인 감성(感性)이 메말라 가지는 않는지 뒤돌아보며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 풍요로운 감옥에서 탈출하려면 무엇보다도 정신이 늘 깨어 있고 자기 인생에 대한 각성(覺性) 없이는 벗어날 기약이 없다. 깨어 있는 사람만이 자기 몫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있고, 깨어 있는 사람만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끝없는 탈출을 시도한다.

보람된 인생이란 무엇인가. 자기답게 살려는 사람이 자기답게 살고 있을 때는 감사와 환희로 충만해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괴로워하듯 자기 몫의 생을 아무렇게나 낭비해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욕구를 충족시키는 생활이 아니라 의미를 채우는 삶이어야 한다. 의미를 채우지 않으면 삶은 빈 껍질이다. 빈 껍질의 삶을 벗어나고파 자연인이 되고자 하는 우리들의 심상(心想)이 평범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의미를 담으며 살지 못한 삶이 아쉽고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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