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디스크 수술 중 의료사고
'좌절 속 양복점 운영 철회 결심까지
'휠체어 탄 재단사'로 인생 2막 개척
'대한민국 빛낸 인물대상' 선정 영예
"힘들지만 좋아하는 손님 보며 보람"

 

[충청일보 박장미기자] 갑작스럽게 찾아온 하반신 마비. 절망 속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는 대신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충북 청주 지큐(GQ)양복점 윤붕구 대표(65)의 이야기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윤 대표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 선배를 따라 재단에 뛰어들었다. 심부름부터 시작해 신사복 만드는 기술을 배웠고, 1982년 '기술사라'라는 이름의 양복점을 갖게 됐다.

1987년 '지큐 양복점'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청주시 상당구 서문동 현재의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맞춤 양복으로 지역에서 입소문을 타고, 단골손님들도 생기면서 점차 자리를 잡았다. 평탄할 것만 같았던 그의 삶에 갑작스럽게 사고가 찾아왔다.

10여 년 전의 일이다. 자꾸만 다리에 힘이 풀리고, 넘어질 것 같아 병원을 찾았더니 '흉추 디스크'라는 진단을 받았다. 일은 계속해야 했고, 척추에 대한 수술이니만큼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수술을 받기로 했다.

"수술만 받으면 말끔히 나아 퇴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눈을 뜨니 다리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수술 실패로 하반신 마비가 된 것이죠."

윤 대표는 장애를 얻게 되면서 예전처럼 일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양복점도 다른 사람에게 넘기기로 했다. 재활 운동도 너무 힘들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방황하던 그를 잡아준 것은 아내 최순자씨를 비롯한 가족들이었다. 집에만 있으면 더 우울해지고 몸도 안 좋아질 테니 돈을 벌기보다는 소일거리로 삼아 양복점 운영을 계속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권유였다.

이미 가게를 넘기기로 계약까지 마친 상태였지만 그 말을 듣고, 없던 일로 한 뒤 다시 양복점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다시 일하기 위해 휠체어에 맞춰 작업대도 새로 제작했습니다. 휠체어를 탄 양복 재단사에게 과연 손님들이 찾아올까 하는 걱정도 됐지만, 얼마 안 가 한두 명씩 가게를 찾아오셨습니다. 감사하게도 휠체어에 앉아 있는 제가 수치를 잴 수 있도록 무릎을 굽혀 몸높이를 낮춰주고, 의자에 앉는 등 배려해 주시더군요."

예전에는 서서도 할 수 있었던 작업을 앉아서만 해야 하니 불편한 점도 많다. 가위질도 몇 번이나 자세를 고쳐가면서 하는 탓에 시간도 배로 들지만 손님들이 양복을 입고 좋아하는 모습에서 보람을 찾는다.

"믿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멋진 양복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음료수를 들고 찾아올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면 그동안의 고생이 보답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무척 기쁩니다."

할아버지부터 아들, 손자까지 3대째 양복을 맞추러 오는 손님도 있고, 강원 영월, 전북 전주, 경기 파주 등 전국 각지에서도 그의 양복점을 찾는다.

그의 실력은 컴퓨터에 저장된 1000여 명의 단골 명단뿐 아니라 양복점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각종 상패와 표창장, 위촉장 등으로도 알 수 있다.

윤 대표는 2016년 패션·디자인 직종 1호 충청북도 명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충북도는 22개 분야 96개 직종 중 동일분야에서 15년 이상 도내 산업현장에 종사하며 관련 기능 분야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해 온 기술인을 대상으로 명장을 선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명장을 준비하던 중에 장애를 얻게 되면서 흐지부지됐어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충청북도 명장에 도전하게 됐는데 좋은 결과를 얻어 기뻤습니다. 하반신이 마비되며 겪었던 좌절감도 잊을 수 있었습니다. 고객들에게는 더 좋은 양복으로 보답해야겠다는 책임감도 느꼈지요."

2017년에는 '대한민국을 빛낸 인물 대상'을, 2018년에는 '탑리더스 대상' 고객 만족 신뢰경영인 부문을 받았다.

이외에도 충북 기능경기대회 금상(1979년),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장려상(1979년)을 받은 것에서부터 충북도지사 표창, 충북 장애인 기능경기대회장 표창, (사)한국맞춤 양복기술경진대회 최우수상 등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천안기술대학에서 직업훈련교사 자격을 취득했고, 대한민국산업현장 교수도 됐다. 가끔 병원에서 요청이 오면 환자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재활에 성공했는지, 장애를 이겨내고 사회에 복귀했는지 등에 대해 강의를 하기도 한다.

"재활하다가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까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극복해야 합니다. 귀찮다고 운동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운동을 꾸준히 하면 더 나빠지지는 않으니까요. '할 수 있다'라는 마음을 갖고 계속 도전하길 바랍니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